최병용 칼럼니스트

 

김종호(55) 교사가 신규 교사였던 80~90년대에는 주당 수업시수가 지금보다 3~4시간 더 많아 24~26시간 수업을 했다. 주 6일 출근에 한 달에 한 번꼴로 야간에 숙직도 섰다. 방학이나 휴일에는 낮에 일직근무도 했다. 주말에 학생들과 야영장이나 학교운동장에서 1박 2일 캠핑도 했다. 강촌으로 기차 여행도 가고, 동아리 학생들과 MT를 가기도 했다. 45세 이후는 맡은 보직이 서너 개씩 됐다. 학년 부장과 정보부장 두 개의 부장을 겸직하며 학급의 담임을 맡고, 상조회장, 학교운영위원회 교원위원, 인사위원까지 맡기도 했다. 그래도 체력이 달리는지 몰랐다.

50세가 넘어서면서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수업이 힘들어졌다. 주 5일 수업이 되면서 일주일에 18시간 정도로 수업이 줄었지만 오후에는 수업을 하다 졸 정도로 체력이 달렸다. 아이들도 달라졌다. 목표의식이 사라져 수업에 집중시키기 힘들었다. 수업태도가 불량해 지적을 해도 말을 듣지 않는 아이와 실랑이라도 한번 하면 온몸에 진이 다 빠지고 ‘내가 이러려고 교사를 했나?’ 하는 자괴감이 밀려오고 사표를 내는 꿈도 꾼다.

이정희(56) 교사는 45세부터 5년을 부장으로 근무한 후 초빙(학교를 위해 교장이 특정한 교사를 유임시킬 수 있는 인사 제도)으로 다른 학교로 전근가지 않고 또 5년을 부장으로 근무한 후 올해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갔다. 기존 학교 부장을 먼저 보직을 주는 관행과 교장의 전적인 권한 탓에 전근 간 학교에서 부장을 맡지 못했다. 젊은 교사들이 하는 업무를 맡으면서 교무실 자리도 구석으로 배정됐다. ‘원로교사를 대우하던 마지막 세대이면서 원로교사로서 대우를 못 받는 최초의 세대’가 된 셈이다. 원로교사에 대한 대우가 없어진 현실에 이래저래 설움을 많이 받으며 심각하게 명예퇴직을 고려하고 있다.

학교 안 원로교사의 비근한 근무 사례를 들었다. 원로교사들의 경우 토의, 토론 등 변화하는 수업 패턴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버릇없는 아이들을 마음대로 지도하지 못하는 스트레스가 커졌다. 나이든 교사를 기피하는 학부모와 학교 현장의 현실, 평교사로 후배 교사를 교감, 교장으로 모셔야 하는 것도 이유가 된다. 오랜 교직 생활로 심신이 지친 경우도 있고 이런저런 이유로 평교사는 정년까지 남은 기간만큼 정산한 명퇴 수당을 받고 특별 승진의 혜택도 보기 위해 대부분 명예퇴직을 한다.

정년을 65세로 환원해도 관리자인 교장, 교감, 장학사를 제외하고 남아 있을 교사는 거의 없다. 65세로 환원하면 늘어난 3년만큼 명퇴금을 더 줘야 해 국민들의 세금 부담만 증가한다. 반면에 정년을 62세에서 60세로 단계적으로 단축하면 줄어드는 명퇴수당에서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원로교사들의 은퇴를 앞당길 수 있다. 교육계에 공무원 연금 개정 때와 같은 명퇴신청 러시가 이어질 것이고 신규 채용을 그만큼 늘릴 수 있다.

임용고시에 합격해도 원로교사들이 퇴직을 하지 않으면 마냥 기다려야 하고 3년 동안 임용을 받지 못하면 합격이 취소되기도 한다. 교대나 사대를 졸업해도 대다수 학생들은 ‘재수나 삼수’를 해야 겨우 임용고시에 합격하는데, 합격하고 발령 받지 못한 젊은 교사가 5천명이 넘었다고 한다. 교사의 정년을 60세로 낮춰 신지식으로 무장한 젊은 교사들을 흡수하여 교육계에 젊은 피를 하루 빨리 수혈해야 한다. ‘정년단축이 원로교사의 경험과 원숙함을 우대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지만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면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며 교사가 존경받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존경은 고사하고 교권침해만 받지 않아도 다행스런 ‘철밥통 교육공무원’이란 서비스직으로 전락한 지 오래됐다. 교사의 정년도 서비스를 받는 수요자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정년을 늘리고 줄이고 할 게 아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부모와 학생, 예비교사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통계에 의하면 학부모들은 60세를 가장 적정한 교사의 정년으로 생각하고 있다. 정년을 줄이면 60세가 정년인 교육행정직 공무원들과의 형평성도 맞는다.

‘65세 정년 환원’과 함께 ‘교장 5년 단임제’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있다. 임기를 마친 교장은 평교사로 내려가 정년을 채우든지, 명예퇴직을 해야 한다. 결국 대부분 명퇴를 선택할 것이고 명퇴 예산만 증가한다. 물러날 때를 알고 스스로 물러나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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