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학협동조합과 민족문학사연구소가 9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ECC에서 ‘대학의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있다. 패널들은 대학의 총장과 재단을 둘러싼 문제로 학내 사태를 겪고 있는 한신대와 상지대, 동국대의 사례를 들어 ‘대학 공공성과 자율성 회복’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한신대·동신대 등 사립대 교수·학생
학내 ‘공공성·자율성’ 회복 한목소리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진리를 탐구하고 최고 지성인들의 요람인 대학교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그 가운데 특정 종단이 설립한 사립대의 공공성과 자율성을 화두로 꺼낸 논의가 눈길을 끌었다.

인문학협동조합과 민족문학사연구소가 9~10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ECC에서 ‘대학의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패널들은 첫날 대학의 총장과 재단을 둘러싼 문제로 잡음이 끊이지 않는 한신대와 상지대, 동국대의 사례를 들어 대학 내 인권 실태를 적나라하게 꼬집었다.

이들은 자본의 논리와 설립자(특정 종단)의 입김으로 재단이사회가 운영되다 보니 그 피해가 고스란히 학생과 교수 등 학내 구성원들에게 미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환경으로 대학 구성원들의 인권이 무시되고, 학교 운영에 있어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한 실정이라고 개탄했다.

패널로 참석한 김누리(중앙대 독문학과) 교수는 대학의 기업화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사립대의 대부분이 자본 논리에 의해 운영되는 실태를 꼬집었다. 결과적으로 학내 구성원의 영향력이 더욱 약화되면서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고 성토하고 나섰다.

◆기업화되는 상아탑…자치회복 운동 절실

김 교수는 한국대학을 한마디로 “장터로 변질됐다”고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연구와 교육의 성과물은 ’상품‘이 됐으며, 기업적 경영방식이 대학을 지배하는 가운데 대학이 몸소 시장에 뛰어든 지 오래”라며 “이러한 경향은 한국고등교육체제의 87%를 차지하는 사립대학들의 경우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난다”고 우려했다.

그에 따르면 1996년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기업인 삼성그룹이 성균관대학교를 인수하고, 2008년에는 두산그룹이 중앙대학교를 인수됐다. 두 대학은 기업에 인수된 이후 총장직선제를 폐지했다.

김 교수는 “대학의 기업화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정세 속에서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의 교육적 국면을 보여준다”며 “자본독재 하에서 대학의 위기는 대학의 기업화라는 형태로 발현됐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대학의 공적 기능을 복원하는 일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시대적 명령”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학내 구성원들이 불의에 저항하지 않는 현실의 문제점 중에 하나로 ‘무력감’을 들었다. 김 교수는 “학생과 교수들은 작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모습을 버리고, 총장 선거와 등록금 책정 등 대학 민주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세미나 첫날 ‘한신대 민주적 총장선출을 원하는 학생모임’ 김진모씨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교육기관인 한신대학교 총장선출 사태를 자세히 설명하며, 종립 사학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나섰다.

김씨는 재단이사회의 전횡으로 한신대 학내 사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사진 퇴진과 민주적 총장선출(총장직선제)을 촉구하고,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학내구성원이 스스로 자치를 회복하기 위한 운동을 해 나가야 한다”며 “자치 회복 운동으로 한신대 사태를 해결하고 학교 정상화를 이루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 동국대 만해광장의 조명탑에서 45일간 고공농성을 벌였던 최장훈 동국대일반대학원 전 총학생회장이 발제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사학자율화정책 재단과 학내구성원 갈등 키워

이어서 3년을 끌어온 동국대 사태의 해결을 요구하며 동국대 만해광장의 조명탑에서 45일간 고공농성을 벌인 최장훈 동국대일반대학원 전 총학생회장이 조계종단의 총장선출 개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동국대 사태는 지난 2014년 12월 코리아나호텔에서 자승 총무원장 등 조계종 고위층 스님 5명이 유력한 총장후보였던 김희옥 총장에게 사퇴 압력을 가하면서 촉발됐다. 종단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제18대 총장으로 선출된 보광(한태식)스님과 학내구성원(총학생회, 교수 등) 간의 다툼은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이어지고 있다.

최 전 총학생회장은 “정부의 대학 법인에 대한 규제 완화, 자율화 정책은 대학 운영에 관한 실질적 권한을 법인이사회에 집중시켰다”며 “(동국대 사태 기간에) 법인이사회의 선택을 받은 총장(보광스님)은 자연스럽게 대학 내 구성원보다 법인 이사회의 입맛에 맞게 대학을 운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학법인과 이사회 권한을 확대시킨 정부의 ‘대학 자율화’ 조치가 결과적으로 총장직선제를 무너뜨렸다. 동국대 사태와의 개연성이 아주 높다”며 정부의 사학법인 자율화 정책의 문제점도 짚었다.

이어 법인이사회 이사들이 종단의 스님들로 구성된 이상, 종단 개입을 차단할 수 없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고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최 전 총학생회장은 “대학 이사회는 조계종단 소속의 스님들이 이사 13석 중 9석이나 차지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조계종단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동국대 학생들은 ‘종단 사유화 반대’ ‘대학 민주주의 실현’ 등을 촉구하며 대학의 공공성과 자율성 보장을 외치고 있다. 이 외에도 보광 총장 퇴진과 총장후보자추천위원회의 민주적 재구성과 총장선거 재실시, 학생·교수 의견이 반영된 이사회 구조 개편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 토론을 진행하는 교수와 학생 등 초청 패널들.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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