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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고개 편] ⑥도적떼 얼마나 많길래… “버티고개 앉을 놈” 말 생겨
장수경 기자  |  jsk21@newscj.com
2017.06.08 08: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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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북한산을 진산으로 하고 북악·남산·인왕산·낙산 등 크고 작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또 산줄기를 뻗어 내리는 지형상 많은 고개도 있었다. 고개는 옛날부터 백성들의 교통로였다. 또 고개마다 다양한 설화도 전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 조상들의 애환과 삶, 숨결이 전해오고 있는 고개 속에 담긴 이야기를 알아봤다.

 

   
▲ 한남동에서 장충단으로 넘어가는 버티고개ⓒ천지일보(뉴스천지)

좁고 험한데다 도적 들끓던 곳
예종 때 남소문 폐쇄하기도 해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밤중에 버티고개 가서 앉을 놈.”

2014년 종영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주인공 김수현이 한 이 말은 검색어가 될 정도로 인기였다. 그 무대인 버티고개는 어떤 곳 이길래, 밤중에 이곳에 앉는다고 한 걸까. 그 해답은 역사 속에 담겨 있었다.

◆도적 들끓던 ‘버티고개’

먼저 버티고개는 서울 중구 신당동 끝과 약수동에서 용산구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와 한남동에서 장충단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통틀어서 이르는 말이다.

한자로는 ‘벌아령’ 또는 ‘부어치’라고 했다. 약수동 고개, 장충단 고개라고도 했다. 오늘날 6호선 버티고개역으로 나가면 버티고개를 찾을 수 있다. 현재 버티고개 주위로 생태통로가 조성돼 있다. ‘서울숲’과 ‘팔각정’ 등으로 가는 안내판도 있어 시민들이 이곳을 자주 이용하고 있다.

   
▲ 한남동에서 장충단으로 넘어가는 버티고개 ⓒ천지일보(뉴스천지)

버티고개에는 몇 가지 이야기가 얽혀 있다. 예전이 이 고개는 좁고 험한 데다 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도적이 들끓었다. 순라꾼들이 야경을 돌면서 ‘번도’라고 외치며 도둑을 쫓았는데, 그 말이 차츰 변하여 번티, 버티, 버터 또는 한자명으로 부어치(扶於峙)가 됐다는 설도 있다.

또 이 고개에 도둑이 많아 생김새가 험상궂고 마음씨가 곱지 않은 사람을 보면 ‘밤중에 버티고개에 가서 앉을 놈’이라는 농담이 생겨났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 13년(1431) 4월 버티고개에 있는 초막에 도적떼가 침입해 승려 3명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아 달아나는 일이 발생했다.

예종 원년(1469)에는 버티고개 남소문에서 도적떼가 군사들을 죽이고 수문 선전관을 쫓아내어 도성 내외를 소란케 해 남소문을 폐쇄했다. 성종 10년(1479)에는 버티고개 일대에 소나무 숲이 조성됐는데, 도적들이 숨기 쉬워 그 일대의 소나무를 베도록 명을 내렸다.

버티고개 마루에는 약수터가 있었다. 물맛이 좋기로 유명해 고개를 넘나드는 사람들이 쉬어가면서 약수를 마셨다. 약수동이라는 행정명도 바로 이 약수에서 유래됐다.

   
▲ 남소문터 표지석 ⓒ천지일보(뉴스천지)

◆버티고개에 남은 ‘남소문터’

지금은 버티고개에 남소문(南小門)터가 남아있다. 남소문은 한양도성 4소문 중 하나였다. 지금의 중구 장충동에서 용산구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세조실록에 보면, 이 문을 축조한 연대는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세조 2년 11월 20일에 세조가 종친과 재상들을 거느리고 청학동(현장충동 일대)에 나가서 건립 예정지를 살펴보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 버티고개 생태통로 ⓒ천지일보(뉴스천지)

건립된 남소문은 1469년(예종 1) 폐쇄됐다. 세조 3년 “남소문을 낸 뒤에 의경세자가 죽었다”는 말이 나돌아 문을 철거해버린 것이다. 동남쪽에 문을 내면 상서롭지 못한 일이 있을 것이라는 음양가의 주장을 받아들인 이유도 있었다. 또 남소문에 도적떼가 출몰한 사실도 폐쇄 원인이었다. 그 뒤 여러 번 이 문을 다시 내야 한다는 진언이 있었으나 실현하지 못했다.

현재는 표지석을 통해 남소문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장충체육관으로 올라가는 방향의 도로변 한쪽에 표지석이 있는데,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표지석에는 ‘서울의 소문으로 세조 때 세우다 예종 원년 음양설에 따라 철거, 그 후 일제강점기에 주초마저 없어지게 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남소문. 하지만 왠지 남소문 터에 서서 주위를 바라보면, 인근에 도적떼가 숨어있는 듯 한 모습이 머릿속에 절로 그려진다. 시간은 흘렀지만 역사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현재와 과거가 연결돼 있기 때문이 아닐까.
 

   
▲ 버티고개 생태통로. 서울숲과 팔각정 등으로 가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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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
장윤서
2017-06-08 09:30:22
찬성:0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삭제하기 신고하기
사극이 생각나네
사극이 생각나네
전체기사의견 보러가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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