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날씨가 뜨거워지자 프로야구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올해 총 144게임 중 57게임을 소화해낸 6월 첫주 주말까지 관중수가 330만명을 넘었으니 2017 KBO 예상치 878만명을 무난히 넘길 것으로 보인다.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프로야구의 인기는 여전하다. 특히 야구의 본고장 미국에서는 메이저리그 그 자체가 열광의 도가니지만 그에 못지않게 프로야구와 관련된 전당도 관광지로서 인기몰이 하는 중이다. 뉴욕 쿠퍼스타운에 자리한 ‘명예의 전당’에는 연간 35만명이 찾을 정도로 국내외 야구팬들의 관심을 받고 관광명소로 태어나고 있다.

1936년 세워진 명예의 전당에는 모두 124명의 프로야구 선수와 감독들이 헌액(獻額)돼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10년 이상 뛴 선수 중 은퇴 후 5년이 지나야 후보 자격이 주어지는 헌액 대상자의 결정은 기자 투표에 의해 이뤄진다. 매년 한두 명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는데, 지금까지 이 전당에 이름을 올린 외국 국적의 선수는 고작 8명이다. 그런 처지에 아시아 최초 헌액은 일본의 국민영웅, 메이저리거 스즈키 이치로 선수가 가장 확실하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 마이애미 말린스에서 뛰고 있는 스즈키 이치로 선수는 일찍이 일본 고교무대에서 타율 7할이라는 야구 천재성을 과시한 바 있다. 프로 입단 후 9시즌 동안 통산타율 3할5푼3리의 전무무후한 대기록으로 일본 프로야구계를 평정하고선 2001년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일본야구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만43세의 나이에도 빼어난 실력을 보이는 그는 스스로 오십까지 현역생활을 고집하고 있는 만큼 체력과 실력에서는 자신만만하다. 어린 시절부터 지독한 훈련을 해왔던 이치로 선수의 천재성은 미국 스포츠 기자와의 대담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기자가 이치로 선수에게 “스스로 (야구)천재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노력하지 않고 뭔가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천재라면 나는 절대 천재가 아니다. 하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뭔가 이루는 사람이 천재라고 한다면 나는 천재가 맞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천재의 손끝에는 노력이라는 핏방울이 묻어있다. 내가 일본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나보다 많이 연습한 선수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는 답에서도 이치로 선수를 ‘일본의 자랑’이라 할 만하다.

이치로 선수에 덧붙여 또 한 사람의 야구 전설은, 미국 프로야구계가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타자’로 인정하고 있는 테스 윌리엄스(1918~2000) 선수다. 메이저리그에서 ‘타격의 신’으로 불리었던 그는 보스턴 레드삭스 소속으로 1939년부터 1960년까지 통산타율 3할4푼4리(역대 7위), 출루율 역대 1위에 올랐던 선수다. 특이한 점은 메이저리그 선수생활을 하면서 잘 나가던 20대 젊은 시절, 제2차 세계대전에 징집돼 전투기 조종사로 3년간 참전했다는 사실이다.

3시즌 공백 끝에 메이저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던 테스 윌리엄스는 1952년 5월에 한국전쟁 전투기 조정사로 다시 재징집됐다. 참전 임무를 훌륭히 마친 그는 1953년 현역 야구선수로 복귀한 그 해 메이저리그에서 4할7리의 높은 타율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선수생활하랴, 전쟁 수행하랴, 바빴던 그는 은퇴 후 야구선수의 꿈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고, 유명한 명언을 남겼으니 지금도 그의 말은 수많은 세계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남자라면 그날의 목표, 인생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나의 목표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게 하는 것이다. - 저기 테드 윌리엄스가 지나간다. 이제까지 존재한 타자들 중 가장 위대한 타자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그가 선수생활을 하면서 마지막까지 목표를 설정하고 자신의 자존심을 지켜내게 했던 이 말 덕분에 후세에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타자’로 알려진 것이다. 실력뿐만 아니라 명언으로도 유명해진 테드 윌리엄스나 스즈키 이치로는 참으로 대단한 선수다.

프로야구 기록 중에는 ‘연속출루’ 부문이 있다. 타자가 한 게임도 빠지지 않고 1루에 살아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일 기록을 보면 일본에서는 1994년 스즈키 이치로가 세운 69경기 출루가 기록이고, 미국은 테드 윌리엄스가 1984년도 세운 84경기 연속기록이었다. 그런 기록을 갈아치운 선수가 한화 이글스 김태균 선수(35)다. 지난 4월 22일 롯데 호세 선수가 보유했던 KBO 종전 기록 63경기를 넘어선 후, 5월 16일 이치로의 일본기록을 갈아치우더니만 6월 1일 테드 윌리엄스의 대기록마저 깨뜨리고 현재 86경기 연속출루 신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풍토가 다른 일본과 미국의 리그와 직접 비교는 적합지 않다고 해도 수치상 나타나는 한미일 프로야구의 공인된 기록으로서 의미는 매우 크다. 스즈키 이치로, 테드 월리엄스의 연속출루 기록을 넘어선 김 선수에게는 이제 세계 비공식 기록을 깨트리는 일만 남았다. 마음고생이 심하고 힘들 테지만 한국리그의 출루달인 김태균 선수가 내친 김에 대만리그 린즈셩(林智勝)의 109경기 연속출루 기록마저 깨트려주기를 바라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기대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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