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세상사(世上事)와 인간사(人間事)가 모두 만만한 것은 아니어서 누구에게도 가는 길이 언제나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날씨도 가끔은 변덕을 부려 궂는다. 햇빛만 나는 것이 아니라 바람도 불고 비도 온다. 평화롭게 배를 띄우던 잔잔한 바다도 갑자기 배를 뒤집을 듯 거칠어지기도 한다(水能載舟 亦能覆舟/ 수능재주 역능복주). 인간지사는 이런 자연의 이치와 한 치도 어긋남이 없다. 그것을 말해주는 것이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고사가 아닌가. 유명한 인간훈(人間訓)이다. 새삼 되새겨 누구나의 기억에 슨 녹을 벗겨 내보도록 한다면 이렇다. 

‘중국의 어느 북쪽 변방 지역에 가난한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점을 잘 치는 사람으로도 유명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애지중지하는 그의 말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다. 얼마나 허망하고 마음이 아팠겠는가. 하지만 그는 그런 나쁜 일이 있었기에 대신 더 좋은 일이 있을지 모른다고 애써 마음을 다독였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놀랍게도 달아났던 그 말이 여러 마리의 다른 말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재산이 엄청나게 더 불어났다. 이에 그 노인은 동네 사람들의 축하인사를 받기에 바빴다. 축제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는 이 길(吉)한 일 때문에 흉(凶)한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정말 얼마 안 가 그의 짐작이 들어맞았다. 그의 아들이 돌아온 말을 타다가 그만 다리가 부러지는 화(禍)를 당하고 만 것이다. 주변에서 그 일에 대해 위로하고 나섰다. 그 자신도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그는 도리어 그 화가 복(福)을 부를지 모른다고 마음을 바꾸어 먹었다. 그런데 과연 큰 전쟁이 일어나 동네 청년들이 징집돼 나가 허다하게 목숨을 잃게 됐지만 그의 아들은 그 다리 부상으로 징집을 면제받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인간사는 길흉화복(吉凶禍福)의 덧없는 전변(轉變)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새옹지마의 고사다. 대저 길흉화복 4개 항목 중 어느 것이나 사람의 생활을 지배할 때 기간의 장단 또는 무게의 경중(輕重)에 관한 차이는 있을지언정 인간사가 그것들에 의해 교번(交番)으로 지배되고 순환된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더구나 일개 개인들의 생활이 그렇다고 한다면 인간의 명예욕과 권력욕이 가장 원초적이고도 치열하게 부딪치는 정치 행위를 일상의 업으로 영위하며 살아가는 정치인들에 대해서야 더 말해 무엇 하랴. 그들에게 일상 닥치며 교번되어 지나가는 길흉화복은 더더욱 격렬(激烈)하며 그 자체가 역사여서 그 자국은 그만큼 더 뚜렷할 수밖에 없다. 이런 취지에서 보아 정권 출범부터 ‘너무 잘 나가 무서울 정도’라던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국무총리 임명 동의안 국회통과 여부를 둘러싼 ‘인사 딜레마(dilemma)’는 그에게도 바람 불고 비오는 ‘궂은 날’이 피해가지 않는 ‘순환’의 이치가 적용됨을 증명해주었다. 그것은 그에게 만만찮은 집권 후의 첫 시험대였다.

그는 이 시험대를 무난히 통과함으로써 어두운 ‘흉화(凶禍)’의 1차 터널을 무사히 벗어났다. 이는 물론 그에게 운이 따르고 그가 정치력을 발휘한 덕분이라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에게 쏟아진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가 반대세력의 기(氣)를 꺾어 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지지에 의존해 국무총리 낙점(落點)자가 비록 문 대통령이 대선 운동기간에 공약으로 내건 ‘등용 불가 5대 원칙’인가 뭔가 하는 것들을 위배한 전력이 있었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굳이 구차하고 옹색하게 그 점에 대해 변명할 필요까지는 없었지 않았을까 생각해볼 수 있다. 그보다는 차라리 사과든 변명이든 정공법으로 솔직하게 직접 국민을 상대로 까놓고 호소했어야 더 떳떳했다. 예컨대 이렇게 말이다. 

‘국민 여러분, 제가 이낙연 전라남도 지사를 총리로 낙점한 것은 그의 원만한 인품과 탁월한 능력에 대해서만 눈여겨봐놓았던 것이 이유의 다는 아닙니다. 그것에 더해 지역 통합과 국민통합 그리고 국민 여러분들이 염원하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전남지사인 그가 적임자라는 판단에 따라 총리감으로 낙점했던 것입니다. 이것 역시 엄연히 제 공약 사항에 포함된 내용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에게 제가 설정한 금기사항 일부에 저촉되는 허물이 발견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의 장점에 비한다면 밥에 뉘 같은 그 허물 때문에 저와 저의 국가경영에 꼭 필요한 그를 버려야 하겠습니까? 이 점 국민 여러분들께서 양해 해주실 수 없는 것입니까?’라고 호소하는 것이 어땠을까. 정치는 결코 낭만이 아니라지만 만약 그의 허물을 덮고 가기로 작정했다면 이렇게 진정성을 다한 반어법의 외침에 대해 ‘그래 버려!’ 하고 매정하게 대답했을 이 나라 국민이 과연 몇이나 있었을까 의문스럽다, 특히나 문 대통령의 당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으며 이낙연 지사가 공복으로서 섬겼던 지역주민들을 중심으로 생각해본다면 그 같은 짐작이 적중될 가능성은 더욱 농후해지는 것 아닌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 했다. 이번 경우가 바로 문 대통령이 어떤 형식으로든 국민과 직접 소통했더라면 발을 쭉 뻗어도 될 법한 경우가 아니었나 싶다. 

그렇더라도 예외 없는 법(法)은 없고 예외 없는 세상사도 인간사도 없다지만 예외는 그야말로 예외로 끝나야 예외의 가치를 지닌다. 지금 국회 청문회를 기다리는 문재인 정부의 고위공직후보자들이 줄줄이 부적절한 사유들을 드러내어 임명권자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이들까지 관용할 마음이 국민들에게 있어 보이진 않는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호사다마(好事多魔), 새옹지마로 바람 불고 비오는 궂은 날들을 곧 더 많이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북핵(核)과 미사일 문제, 중국이 보복을 거두려 하지 않는 사드(THAAD) 문제, 이런 문제들로 인해 파생될 수 있는 한미동맹에서의 갈등 등 외교 안보 문제, 일자리 등 국내 경제 문제 등도 당장 그런 것들이 아닌가. 민심은 변덕스럽다. 거기다 잘 한 일보다는 잘 못한 일에 무게를 더 두어 부침을 거듭한다. 따라서 예외를 많이 만들거나 시행착오가 되풀이되어 거스르는 일이 잦으면 금방 등을 돌리고 마는 것이 민심이다. 이를 안다면 인기를 누리는 지금처럼 좋은 날들에 초심과 원칙이 누그러져 점수를 까먹는 일을 하기보다 건초를 말리며 비오는 날에 대비해 우산을 준비하는 심정과 자세로 정권의 성공을 기약해야 한다. 그것이 문재인 정권에게나 국민에게도 해피엔딩의 축복이 될 터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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