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윤 행복한통일로 대표/을지대 겸임교수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는 3만여명의 탈북인들이 있다. 그들과 소통해본 필자의 경험에 비춰보면, 이들 탈북인 중에 김씨 왕조의 시조인 김일성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에 반해 김일성의 아들인 김정일에 대해서는 입에 담기조차 민망할 정도의 욕설을 늘어놓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같은 가문의 아버지와 아들인데 왜 이렇게 백성들로부터의 반응은 천양지차일까….

타고난 쇼맨십을 갖고 있던 김일성은 철저히 양면의 얼굴로 북한주민들을 상대했다. 김일성의 이중적인 면모를 확연히 알 수 있는 대사건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1956년 8월, 국제공산주의의 변화에 맞추어 향후 북한의 재건과 미래를 논의하던 전원회의가, 종파분자들의 망동으로 찍혀 모두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거나 처형당했던 사건인 8월 종파사건 때의 모습이다. 당시 김일성은 치열하게 논쟁으로 치닫던 전원회의 와중에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간 뒤 호위사령부를 통해 자신의 정적들을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로 체포령을 내리게 되는데 이 사건으로 북한에서는 처음으로 북한인권의 대명사인 정치범수용소가 만들어진다.

또 하나의 김일성 얼굴은 한없이 자애로운 인민의 어버이 모습이다. 밀짚모자를 쓰고 농민들과 둘러앉아 막걸리에 소박한 밥상을 차려놓고 호탕하게 웃고 즐기는 모습은 영락없는 시골 마음씨 좋은 촌장을 연상케 한다. 이것이 바로 김일성의 탁월한 이미지 정치였던 것이다.

본질과 본색은 숨긴 채 대중을 속이기 위한 교묘한 조작정치가 바로 김일성을 비롯한 공산독재자들이 썼던 대부분의 통치방식이었다. 여기에는 당연히 용비어천가를 소리 높여 부르짖는 어용언론들이 필수적으로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북한에서도 이 같은 주민기만용 이미지 정치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지성인이 있었는데, 바로 북한의 솔제니친으로 알려진 ‘고발’ 소설집의 반디 선생이다.  

반디 선생은 자신의 단편집 ‘고발’ 다섯째편의 ‘복마전(伏魔殿)’에서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합치면 구천에도 차고 넘칠 그 고통의 아우성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밖에선 지금 저처럼 ‘행복의 웃음’ 소리만이 누리를 울려대고 있는 것이냐! 그것도 결국은 양쪽 손톱을 동시에 뽑히는 듯한 고통을 당한 오씨를 선창자로 하는 ‘행복의 웃음’ 소리가!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을까? 그 어떤 잔학한 마술의 힘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뭇사람들의 고통의 울부짖음을 ‘행복의 웃음’으로 둔갑시킬 수가 있단 말인가.”

길을 가다 우연히 김일성을 만난 할머니가 ‘어버이 수령님’의 자애로움을 입어 1호 차량에 태워져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셔졌다는 것을 선전하는 자료로 이용되는 과정을 그린 것이 바로 ‘복마전’이다. 한자를 풀이하면 마귀가 숨어있는 전당이라는 뜻으로, 나쁜 일이나 음모가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는 악의 근거지라는 의미이다.

반디 선생의 고발 소설집을 읽고 감상문까지 보내온 한 북한인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김일성이 없었다면 김정일도 없었을 것이고, 300만의 대아사도 없었을 것이다. 김일성이 없었다면 오늘의 3대세습도 없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내가 사는 이 땅의 암흑은 장본인이 김일성이다. 하지만 지금도 북한주민의 90%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너무나 소름끼치지 않은가. 백성들은 목 놓아 울부짖고 있는데 밖으로 나오는 모든 모습은 언제나 지상의 낙원으로 둔갑되어 하하 호호 웃는 모습만 비쳐지는 현실이 말이다. 이 모든 거짓의 마법은 바로 김일성을 비롯한 공산독재세력들의 이미지 정치에 있었다는 역사적 진실을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다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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