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1

김동리(1913 ~ 1995)

내 어려서부터 술 많이 마시고
까닭 없이 자꾸 잘 울던 아이
울다 지쳐 어디서고 쓰러져 잠들면
꿈속은 언제나 무지개였네

어느 산 너머선지 아련히 들려오는
그 어느 오랜 절의 먼먼 종소리
그 소리 타고 오는 수풀 위 하늘엔
지금도 옛날의 그 무지개 보이리

 

[시평] 

소설가로 유명했던 김동리 선생이 젊은 시절에는 시를 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안다. 시를 쓰던 젊은 문학청년이 소설로서 대가(大家)가 되어 한 시대의 문학인으로 우리 문단에 우뚝 자리하였던 것이다. 이런 사실로 보아 ‘시’는 모든 문학소년, 문학청년들에게 있어 어쩌면 문학적 한 절대의 장르였는지도 모른다.

시를 쓰는 젊은 청년은 술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리곤 술이 취하면 이내 잘 울기도 하는, 감성이 남다른 청년이었던 모양이다. 울다가는 아무데고 쓰러져서는 잠이 드는, 참으로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그런 감성을 지닌 청년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아무데에서나 들었던 그 잠 속에는 늘 무지개의 꿈을 꾸곤 했다고 한다. ‘무지개.’ 소년이 찾아 떠나던 그 꿈의 무지개. 꿈속에서 늘 그 무지개를 찾아 떠나는 청년이었던 소설가 김동리. 

오늘도 망연히 앉아 있으면, 어느 먼 산 너머로 아련히 들려오는 어느 오랜 절의 종소리. 그 소리 타고 오는 수풀 위에 떠오르는 그 옛날 꿈속에서 쫒아가던 무지개. 이제 수많은 시간을 살아온, 그래서 이렇듯 노년에 들어도, 그 젊은 시절, 술이 취해 아무렇게나 잠이 들었던, 그 시절 꿈속에서 보던 그 무지개. 지금도 가슴에 남아, 이렇듯 설레며 찬연히 떠오르고 있구나. 마음 속 무지개를 잃지 않는 한, 그 사람 영원한 청년이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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