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

한때 횟집에서 유행한 개그 한 토막. 서민들에게야 횟집도 분에 넘치지만 고급 일식집 대신 대중 횟집에 마주앉은 샐러리맨들끼리 주고받던 흰소리 중에 ‘횟집과 일식집의 차이점’이 안줏감으로 올랐다. 나도 몇 번 들은 적이 있는데, 대충 기억을 되살려 보자면 정답이 대여섯 가지는 됐던 것 같다. 첫째, 횟집에는 상추가 나오는데 일식집에는 없다. 둘째, 횟집에서는 아줌마가 도우미인데 일식집에서는 아가씨가 서브한다. 셋째, 횟집에는 큰 병맥주가 나오는데 일식집에는 작은 병맥주만 나온다. 넷째, 횟집은 내가 쏠 때 가는 집이고 일식집은 얻어먹을 때 가는 집이다. 다섯째, 횟집은 신용카드 결제가 안 되는데 일식집은 된다(요즘은 다 되지만).

여기까지 대화가 진전되다 또 뭐가 더 없는지 궁리하던 차에 한 친구가 덧붙였다. “횟집은 경찰이 가는 집이고 일식집은 영감님(검사)이 가는 집이다.” 그 순간 우리들은 박장대소했지만 뒷맛은 씁쓸했다. 마침 그때는 천신일 검찰총장 내정자가 거액 스폰서 의혹사건으로 청문회 직후 낙마했던 시절이었다.

갑자기 이 얘기를 꺼내는 것은 요즘 부산지역 검사들의 접대관행이 문제화한 사건 때문이다. 이 사건이 불거지자 여론의 질타가 빗발쳤다.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그룹 비자금사건 폭로가 터졌을 때 검찰에게 붙여진 꼴사나운 별칭인 ‘떡검(떡값받는 검찰)’을 비롯, 이번엔 ‘섹검(성접대받는 검찰)’이란 용어까지 등장했다. 이건 약과다. 대검찰청 홈페이지 주소가 ‘spo.go.kr’인 것을 두고 네티즌들은 “홈페이지 주소까지 스폰서(sponsor)의 약자다”라고 꼬집는가 하면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 ‘검사 프린세스’를 ‘검사 프리섹스’라고 패러디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이 같은 여론의 질타분위기와는 다른 이상한 흐름도 일부에선 나타나고 있다. 진상규명위원장으로 선임된 성낙인 서울대 법대 교수가 이번 사안의 원인으로 “한국의 온정주의적 문화”를 꼽은 데 이어 일부 언론은 검찰이 워낙 박봉이어서 그런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으니 이런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성 교수는 “한국사회 특유의 온정주의적 문화가 결국 이런 불행한 일로 연결되었다”고 언급했다.

조선일보는 23일자 사설 <검찰다운 검찰이 될 수 있는 여건도 만들어줘야 한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검사들의 촌지·향응 접대 사실이 폭로된 이후 대검찰청 앞에선 규탄 시위와 기자회견, 그리고 인터넷에는 ‘검사 월급이 아깝다’는 글들이 넘쳐나고 있다”고 일단 지적하고 “그러나 검찰의 행태를 바로잡으려면 이런 규탄만으론 부족하다. 검사 생활 20년 동안 이사를 15번 이상 했다는 검사가 수두룩하다. 매년 정기 인사 때마다 임지(任地)를 옮겨 다니기 때문이다. (중략) 아이들 과외비용 대기도 힘들다. 객지 생활에 시달리며 상대적으로 수입에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닌 검사들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려고 온갖 수단으로 접근해 오는 지역 유지들의 유혹을 뿌리치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검찰의 ‘스폰서(후원자)’ 관행은 이런 배경에서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이어 “검사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게 하려면 무엇보다 공명정대한 인사가 이뤄져야 한다. 호남 정권이 들어서면 호남 출신 검사가, 영남 정권이 들어서면 대구나 부산 출신 검사가 요직을 싹쓸이해온 게 검찰의 현실이다”며 엉뚱한 인사타령이 이어진다. 이 신문은 인사가 제대로 이뤄져야 이런 관행이 사라질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견강부회의 전형이라 할 사설이다. 스폰서문화가 잘못된 인사관행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국민을 호도하기위한 차원 낮은 수법이다.

검사는 같은 고시출신이지만 임용되자마자 행시출신보다 한 단계 높은 서기관대우를 받는다. 검찰조직에는 차관급예우를 받는 검사장급 이상만 53명에 달한다. 차관급이 이렇게 많은 정부부처는 검찰조직 외엔 없다. 검찰이 박봉인데다, 지방을 전전해서 스폰서가 필요악이라는 주장은 같은 입장인 타 부처 공무원들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불온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스폰서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검찰에게 스폰서가 몰리는 현재의 풍토에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검찰에게 기소독점주의 등 무소불위의 형사법적 권력이 주어져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찰개혁이 시급하다. 검찰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고 검찰내부의 자정노력이 병행해야만 검찰 내부적으로 ‘미풍양속’이라고 둘러대는 스폰서문화가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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