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교향곡의 아버지 요제프 하이든. 그가 모차르트와 함께 오스트리아가 낳은 가장 위대한 음악가 중 한 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든든한 후원자 덕분이었다. 오스트리아 문화 예술의 대부로 불렸던 에스트하지 가문이 경제적 지원과 성원을 아끼지 않았고, 하이든은 그 덕에 음악에만 전념, 눈부신 성과를 일구어낼 수 있었다.

하이든 하면 에스트하지가 떠오를 정도로, 에스트하지 가문과 하이든은 바늘과 실처럼 절대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에스트하지 가문의 문화 예술 지원 사업 전통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89년 이 가문의 마지막 백작인 파울 5세가 작고하자 그의 부인 멜린다가 전 재산을 희사해 재단을 설립, 오스트리아의 문화유산 보존과 지원 사업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30년간 변함없이 에스트하지 가문의 후원을 받은 하이든은 행복한 예술가였다. 이에 반해 베토벤, 모차르트, 바흐 등은 말년을 고달프고 쓸쓸하게 보내야 했다. 후원자의 지원이 끊긴 것이 결정적이었다. 비단 이들뿐 아니라, 오랫동안 변함없이 후원자와 돈독한 관계를 맺은 예술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미켈란젤로를 후원한 것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도 문화 예술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으로 화려한 르네상스의 꽃을 피워낼 수 있었다. 문화 예술에 대한 후원은 오늘날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가문이나 기업에서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예술가들은 예술에만 전념하고 그래서 빛나는 성취를 빚어내는 아름다운 전통이다. 선의의 스폰서 문화다.

요즘 우리 사회가 ‘스폰서’로 시끄럽다. 한 사업가가 무려 25년 동안이나 검사들에게 술과 성 접대를 해 왔으며 그 비용만도 100억 원이나 된다고 폭로했다.

언론은 단박에 그로부터 접대 받은 검사들을 ‘스폰서 검사’라는 딱지를 붙였다.

스폰서 검사라면, 누군가를 후원했다는 이야기다. 스폰서 검사의 실태를 세상에 알린 그 사업가는 과연 그들로부터 무슨 후원을 받았을까. 그는 순수한 동기로 그들에게 술과 여자를 대접했다지만, 곧이곧대로 믿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스폰서 역할이 실제로 있었는지 여부를 떠나, 그들의 거래가 추악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얼마 전에는 우리나라 여자 연기자 열 명 중 여섯이 성접대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는 설문 결과가 나왔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9~12월 여성 연기자 11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했더니, 60.2%가 사회 유력 인사나 방송 관계자에 대한 성접대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성접대 상대는 재력가, 연출PD 혹은 감독, 제작사 대표, 기업인, 광고주, 방송사 간부, 기획사 대표, 정관계 인사 등인 것으로 밝혀졌다.

여성 연기자 55%는 유력 인사와의 만남 주선을 제의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만남이 곧 스폰서 관계를 맺는 것이다. 돈 혹은 권력이 많은 남성이 뒤를 봐 주는 대신 여성 연기자는 성접대로 화답해 주는 일종의 매춘 계약이랄 수 있다.

스폰서 관계를 위한 만남이 연예계의 일상적인 풍경이라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이야기다. 작년 이맘 때 장자연이라는 젊은 여배우가 자살하면서 성접대 등으로 인해 무척 고통스러웠다는 유서를 남겼다. 지금도 누군가는 스폰서가 되기 위해, 또 누군가는 스폰서를 구하기 위해 은밀한 거래를 하고 있을 것이다.

추악하고 구역질하는 스폰서 대신, 향기롭고 아름다운 스폰서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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