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연(화가, 건국대 겸임교수)

지난주에 서강대학교 개교 50주년 행사에 다녀왔다. 친구들은 100주년인 2060년에도 다시 만나자고 한다. 그러면서, 줄기세포 얘기가 나왔다. 건강할 때 채집해 놓으면 나중에 쓸 수 있다고 말이다. 과학이 발달하여 생명의 무한 연장이 가능한 시대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이 든다. 건강한 80살이 쉬운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연장만이 능사가 아니다. 오래 사는 것보다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을 지낸 유준상 선생은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지식과 재화를 땅 속으로 가지고 갈 수는 없다. 모두 현세에 놓고 떠난다. 현대를 소유가 아닌 만남의 시대(age of access)로 비유하는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며칠 전 화실을 정리하다가 2003년 홍경택 작가의 조선화랑 전시 리플렛을 발견하였다. 그 당시 작품 구경을 한 적이 있었다. 연필, 볼펜, 색연필 등이 튀어 나올 듯한 그림이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이때의 작품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소위 대박이 난 것이다. 거꾸로, 대박이 난 작품은 다른 것들과 차별성이 매우 강하다고 보면 맞다. “왜 특정한 사람에게만 행운이 되풀이 되는지를 연구한 결과 운 좋은 사람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불확실성을 즐긴다는 점이다. 운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항상 확실한 것만 찾고 불확실한 상황에 자신을 노출 시키지 않는데 비해, 운 좋은 사람은 불확실한 상황에 더 많이 관여했다”라고 영국의 심리학자 리처드 와이즈먼은 말했다. 그림은 첫 눈에 느낌이 강하게 오면 사버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 경우이다. 소유가 아닌 만남으로 만족해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경험을 다른 작가에게서 두 번이나 더 하였다. 이는 아마 엄청난 작품들을 긴 세월인 30여 년 동안 관람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세계 각국에서 피카소, 고흐, 클림트, 요하네스 베르메르, 모네, 샤갈, 쿠르베, 마네, 리그리트, 앤디워홀,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데미안 허스트, 제프 쿤스, 다카시 무라카미, 백남준 등, 최근에는 해외 아트페어, 인사동, 청담동, 사간동, 서초동에서 무수한 작품들을 보면서 무엇인가 차별적인 것을 골라내는 눈이 생긴 것일까? 미술작품에도 일반 상품처럼 트렌드가 있다. 이 트렌드 속에 보석처럼 빛나는 차별성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내가 요즈음에 젊은 작가들을 만나면 그들의 작품에서 트렌드 속의 차별성을 찾으라고 강조하곤 한다. 창의성은 연결에서 나온다. 차별성이 나올 때까지 트렌드를 엮어 보자.

한편, 작가로서 성공하려면 내가 강조하는 또 하나 필요한 인간 덕목이 있다. 바로 신뢰이다. 스티븐 코비는 그의 책 ‘신뢰의 속도’에서 신뢰가 사라지면 강력한 정부, 성공하는 기업, 번영하는 경제, 영향력 있는 리더, 돈독한 우정, 강한 성품, 깊은 사랑이 무너지며 신뢰가 있으면 모든 삶의 차원에서 전례 없는 성공과 번영을 이룩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고 하였다. 신뢰는 글로벌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핵심 리더십 역량이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신뢰의 속도만큼 빠른 것은 없다. 신뢰를 지키는 사람들은 무엇을 바라고 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현재에도 신뢰는 사람들에게서 멀리 있다. 악어의 눈물로 상징되는 거짓들이 횡행한다. 그래서 대다수 국민은 신뢰만이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석조 선생은 2001년에 기고한 모 미술 잡지에서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과정에서 비리를 일으킨 소위 ‘고얀 놈’들인 당시 한국미술협회 전․현직 간부들을 질타한 적이 있다. 금품 수수, 학연, 지연 등을 이용하여 낙선작을 입선시키고 당선작을 낙선시킨 25명을 불구속 입건하였다고 쓰고 있다. 이러한 사건은 짐 콜린스가 강조한 ‘적합한 사람을 적합한 좌석에 앉히는 것’을 하지 않아서인가? 아니면 애당초 적합한 사람이 없어서인가?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은 당신이 내게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신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 것이라고 니체가 말하였듯이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특히 순수해야 하는 마당에 신뢰를 헌신짝처럼 던져버리는 인간들은 그 마당에서 결코 리더가 될 수 없다.

우리 사회를 보면 자율과 개방의 정신은 아직도 권위와 폐쇄에 발목이 잡혀 있고, 소통과 신뢰는 혈연, 학연, 지연의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라고 이홍규 교수는 말한다.  신뢰의 우물을 넓게 파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럿이, 소위 집단 지성이 힘을 모아 파는 것이다. 우리 모두 신뢰받는 사람이 되어 미술의 대중화가 아닌 대중의 미술화를 이루는 행복한 그 날까지 앞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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