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지금은 국민이 직접 자신의 손으로 붓 깍지를 눌러 대통령을 뽑지만 우리에게는 국회 등에서 대통령을 뽑은 간접선거 경험도 많다. 물론 직접 선거에 비해 국민들의 역동성은 덜 발휘되지만 간접선거도 그 권능의 출발은 어디까지나 국민으로부터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대통령을 뽑을 국회의원 등을 뽑는 선거인들이 바로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어떻든 직접이나 간접선거를 다 합해 우리 국민은 정부 수립 후 지금까지 모두 19번의 대통령 선거를 경험했다. 인물의 수(數)로는 장기집권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직·간접 선출을 합해 19대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두 12명이다. 그런데 이 인물들 모두의 생(生)얼굴과 개성 배인 육성을 빠짐없이 직접 보고 들을 수 있었다면 그 사람은 누가 나이를 물어오는 게 불쾌해지는 인생 후반기의 사람일 것임이 틀림없다. 

아무리 그렇다하더라도 초대부터 현재까지의 대통령 모두를 빠짐없이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처럼 민주주의 역사가 자연인의 평균수명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짧은 경우가 아니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기실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는 그동안 국민이 겪어온 수난으로 본다면 결코 짧게 느껴지지 않을 수는 있어도 연대기(年代記)적으로는 그리 썩 오래된 것은 아닌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민주주의 역사가 짧아서이든 아니면 개인이 어느 정도 오래 살아서이든 국민이 초대부터 지금까지의 대통령을 빠짐없이 직접 경험해오고 있다면 그 경험자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그만큼 역사의 산 증인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것이 된다. 그것은 엄청난 민주적 자산이다. 그 자산 앞에 정치인들은 겸손해져야 한다. 정치인들이 바보 같은 한두 사람은 감쪽같이 속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이처럼 역사를 관통하는 체험의 눈을 가진 이 많은 사람들을 속이기는 불가능하다. 그들의 눈은 날카롭고 매서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런 역사의 증인들, 바로 그렇게 깨인 국민들 앞에서 정치인은 항상 외경(畏敬)의 마음을 가다듬고, 새삼 또 가다듬을 수 있어야 진정 존경받는 참다운 지도자가 될 수 있다. 말하자면 날로 높아지는 국민의 수준에 맞추어 정치인에게도 날로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지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자기 혁신이 요구되는 시대가 됐다. 그렇다고 너무 앞서나가거나 너무 뒤처지지는 말아야 하며 날로 새로워지는 국민의 눈높이로 소통하고 보조를 맞추어 나간다면 그에게 실패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국민이 속고 속으면서도 많이 기다렸지만 이제 그런 지도자가 우리 가운데로 성큼 몸을 드러낼 때도 됐다고 봐진다. 우리 국민이나 정치 지도자들이 역사에서 사회진화를 이루어나갈 교훈을 얻을 만한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시각보다도 외부의 시각을 통해 분명해지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쯤해서 우리가 갖은 시련을 겪으며 기다리던 정직하고 성실하며 국민을 들볶기보다 먼저 자신을 채찍질하는 겸손한 그런 정치 지도자가 나올 때가 됐다고 믿는 국민의 여망에 신뢰의 무게가 실리는 것은 자연스런 추세라 할 수 있다. 

조금도 가감할 것도 없이 요즘 항간의 화제는 솔직히 ‘문재인 대통령이 너무나 잘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정치 풍토는 경쟁 정파에 대한 칭찬에 있어 너무도 야박하다. 그런데도 어느 야당 국회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이 무섭게 잘 한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 아니었나. 이 극찬 역시 여론의 범주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도리어 그것을 생생하게 대변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국민 또한 남에 대한 칭찬에 있어 헤프거나 너그럽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역사적 수난에서 항상 피해자였으며 그 과정을 통해 단련되고 매서워진 눈을 가진 그런 국민이 ‘문재인 대통령이 잘 하고 있다’는 것을 일상 화제로 삼는 실정이라면 그는 정말 잘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봐야 한다. 비록 취임 후 일천(一喘)한 시간이 흐른 것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굳이 86%가 넘는 국민이 문 대통령이 ‘잘 하고 있다’는 것에 동의하고 지지한 작금의 여론조사의 수치를 들먹일 것도 없다. 이런 일이 언제 있었던가. 초대 대통령부터 19대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들을 직접 다 경험한 역사의 산 증인들에게도 이런 경험은 진기하며 처음이다. 이래서 얼떨떨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국가의 진운(進運)이 결정적인 기로에 처한 현재의 상황에서 겪는 이런 이색 경험은 우리 모두에게 차라리 크나큰 즐거움이며 위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와 대척점에 있었던 사람들까지도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추호라도 그에게마저 역대 대통령들의 실패가 재현된다면 그건 바로 우리 모두에게 재앙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잘 하고 있다는 항간의 여론에 우리는 고무될 수밖에 없지만 그럴수록 그 자신은 그의 어깨에 멘 중차대한 소임(所任)의 십자가가 자꾸만 더 무거워짐을 느낄 성 싶기는 하다.   

역시 주목되는 것은 그 자신 스스로도 절대로 성공한 대통령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엄숙한 역사적 책무를 훤히 꿰뚫어 보고 있다는 것이 관측되고 있는 점이다. 그는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故) 노무현 대통령 추도 모임에서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마지막이며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다’고 다짐했다. 바로 이 대목이다.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 누가 알았나. 국민들은 물론 그의 피아(彼我)의 모든 정치인들도 의표를 찔렸음이 분명하다. 그는 덧붙여 ‘우리는 다시 실패하지 않을 것이며 이명박·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정부까지를 성찰하며 성공의 길로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이 점까지도 명철을 발휘하는 그를 어느 쪽에서 흠잡을 수 있겠나. 너무 잘 나가서 걱정이고 칭찬이 홍수를 이루어 위태로워 보이며 무서울 지경이다. 그렇지만 항상 호시절이 계속될 수는 없다. 어려운 때와 교번(交番)될 수 있다는 것도 ‘준비’되고 명철이 뛰어나 보이는 그는 충분히 대비하고 있을 것 같기는 하다. 문제는 많다. 특히나 안보와 경제 문제가 그를 어렵게 할 수 있다. 어떤 경우든 자명한 것은 그가 스스로 다짐하는 그의 성공은 바로 국민의 바람이고 꿈이라 할 수 있다. 국민은 절대로 그의 실패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불가피한 협치(協治)의 중심을 그런 국민을 믿고 그런 국민의 중심에 두며 지금처럼 삼가고 진솔하며 겸손하게 국정을 이끌어간다면 그의 꿈도 이루고 동시에 국민의 꿈도 이룰 수 있다는 꿈을 꾸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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