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24일 국회인사청문회에서 이낙연 후보자는 김영란법에 대한 윤후덕 의원의 질문을 받고 ‘수정 가능성’을 언급했다. 김영란법 수정을 “검토할 때가 됐다”고 했다. “전반적으로 들여다보겠다”고까지 했다. 이 후보자의 발언은 매우 부적절하다. 적폐청산과 사회개혁을 지향하는 문재인 정부의 총리 후보자가 부패방지법의 ‘수정 검토’를 언급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성격에 안 맞는다. 부패청산이라는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총리자격에 문제가 있다.   

김영란법이 어떤 법인가? 부정부패에 찌들대로 찌든 한국 사회를 맑고 깨끗하게 변화시키는 법률이다. 해방 후에 이 같은 법률이 또 있었던가? 전 국민권익위원장 김영란씨가 내어 놓은 원안은 부정청탁금지와 이해충돌방지 장치를 구비했다. 하지만 국회논의 과정에서 청탁금지 조항만 남고 이해충돌방지 조항이 빠져버린 반쪽짜리 법률이 됐다. 반쪽짜리일지라도 국민들은 환호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뿌리 뽑을 수 있는 역사적 출발점이라고 여긴 탓이다. 

우여곡절 끝에 제정된 반쪽짜리 법률마저 근거 없는 이유를 갖다 대며 반대하는 세력이 소리 없이 준동했다. 국민여론 덕에 92%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되긴 했지만 법률안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김영란법을 공격하는 흐름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맨 먼저 나선 곳은 대한변협이다. 헌법재판소에 위헌 제청을 했다. 다행히도 헌재는 합헌 결정을 했다. 

정치권에선 주로 여당 측, 그 가운데서도 공천만 받으면 다음 선거에 아무런 두려움이 없이 당선될 수 있는 경북지역 의원들 사이에서 반대의 흐름이 강하게 형성됐다. 하지만 여당만 반대한 것이 아니다. 김영란법을 수정하겠다는 의견은 야당에서도 나왔다. 지난해 8월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김영란법의 3(식사)·5(선물)·10(경조사)체제를 5·10·10으로 바꾸는 것이 합리적이라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시행령 개정을 요구했다. 상한 수준이 낮아 “선의의 피해자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당시 나는 매우 뜬금없다고 느꼈다. 왜 야당의 주요 당직자가 김영란법 흠집 내기와 수정 흐름에 편승하는가 싶었다. 그런데 그제 이낙연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또 같은 흐름을 목격했다. 

인사청문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윤후덕 의원은 이낙연 후보자에게 ‘김영란법의 현실적 검토와 시정 가능성’에 대해 답변을 요구했다. 이 자리에서 부패방지에 대해 철학이 분명한 인물이었다면 단호하게 한마디 했을 것이다. 그럴 생각이 전혀 없고 김영란법 수정은 개혁정부 문재인 정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질문자의 의도에 맞게 이 후보자가 그럴 생각이 있다고 말하자 윤 의원은 박근혜 정부가 계획했던 2018년까지 기다리지 말고 “즉시 할 의향”은 없느냐고 치고 들어왔다. 이 후보자는 “네, 빨리 하겠습니다” 하고 화답했다. 개혁정부의 총리 지명자로서 부적절한 발언을 연거푸 했다.  

이 대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김영란법의 자구 하나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을 단호하게 밝혀서 문재인 정부 관련 인사들의 입에서 다시는 이런 역주행하는 말들이 나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개혁은 흐름이 있다. 한 번 흐름이 꺾이게 되면 모든 게 흔들리게 된다. 김영란법에 대한 후퇴는 개혁 흐름을 왜곡시키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김영란법은 단순한 법률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의견 통일을 본 개혁 법률이자 반부패 법률이고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법률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반쪽짜리로 출발한 김영란법의 나머지 반을 채워서 온전한  법률로 만드는 임무를 떠맡아 주었으면 좋겠다. 김영란법에 이해충돌방지 규정을 담자는 말이다. 정부를 운영하는 데 있어 이해충돌을 방지하지 못하면 부정부패는 ‘이대로 쭉’ 계속 된다. 정부 관료와 국회의원, 검사, 판사, 경찰, 공공기관 종사자 등 국가 기관에서 일하는 공직자들이 스스로의 이해와 충돌하는 업무를 거리낌 없이 수행하는 현재의 풍토를 내버려 둔다면 대한민국은 뿌연 안개 같은 부패가 사회 곳곳에 퍼져 있는 암울한 나라로 남을 것이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김영란법을 두고 특정 분야에 ‘피해를 주기 때문에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선 ‘피해’라는 말은 부적절하다. 마치 김영란법이 가해자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농·수·축산물 업종이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지는 구체적 점검이 필요하고 대책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일부 업종에 영향이 있으니까 공직자가 부정부패 행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도 된다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다. 일부 업종 종사자들의 생활수준이 하락하거나 악화되지 않도록 대책을 고민하는 건 당국이 해야 할 일이다. 당국은 당사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지원 방안을 포함한 구체적인 대책 마련을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  

지난 대선 때 홍준표 후보는 현행 3·5·10을 10·10·5로 바꾸고 농·수·축산물은 아예 제외하겠다는 공약을 했다. 홍준표 후보가 당선됐다면 김영란법이 대폭 후퇴하는 결과가 생길 뻔 했다. 홍 후보의 공약을 보고 많이 놀랐는데 이낙연 후보자의 발언을 보고 또 많이 놀랐다. 다시는 개혁정부의 길을 가야할 운명인 문재인 정부에게 걸림돌이 되는 반개혁적인 발언과 행동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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