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20세이하 축구대표팀은 답답한 성인축구대표팀과 달리 시원스런 사이다맛을 선사했다.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에 참가중인 대한민국팀이 23일 남미의 강호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2-1로 승리하면서 보여준 탁월한 경기력은 팬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바르셀로나 ‘듀오’ 이승우와 백승호는 빼어난 개인기와 돌파력으로 공격을 이끌었고, 골키퍼 송범근과 수비수 이상민, 김승우 등은 견고한 그물망 수비력을 구축했다. 풋풋한 약관의 나이인 겁 없는 신세대 축구 태극전사들의 플레이에 “한국축구의 미래가 아주 밝다. 어쩌면 이렇게 멋있게 할 수 있나”라는 반응들이 이어지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쉽지 않을 것이라던 아르헨티나에 무난히 승리하는 것을 보면서 필자가 경험한 예전 아르헨티나와 관련한 추억이 떠올랐다. 지금과는 상황이 달랐던 기억들이 진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축구에 모든 것을 건 축구 강국 아르헨티나에 비해 한국축구는 ‘변방’이었다. 브라질과 함께 남미축구를 이끌었던 아르헨티나를 한국축구는 부러움 속에서 지켜봐야 했다.

아르헨티나 축구의 첫 경험은 1979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코카콜라 유스챔피언십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축구 신동’ 디에고 마라도나가 만 19세의 나이로 출전, 천재적인 감각을 보이며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끄는 모습을 흑백 TV 생중계로 지켜봤다. 이 대회를 통해 마라도나라는 선수가 국내에 처음 알려지게 됐다. 

본격적으로 아르헨티나 축구를 만난 것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이었다. 한국과 예선서 같은 조에 속했던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를 간판스타로 내세워 한국을 일방적으로 두들겼다. 마라도나를 잡기 위해 허정무가 육탄 수비를 서슴지 않아, 외신들이 한국축구를 ‘태권 축구’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한국은 박창선이 중거리슛으로 월드컵 사상 첫 골을 아르헨티나전에서 기록한 것에 만족해야 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가 볼을 살짝 건드려 골로 연결시켜 ‘신의 손’이라는 말을 들으며 승승장구하며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축구기자 시절이던 1991년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남북단일팀이 조인철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하는 것을 현장에서 직접 봤다. 남한 선수들이 개인기가 좋고, 북한 선수들이 돌파력이 좋았던 남북단일팀은 당시 자신만만하던 아르헨티나를 맞아 북한의 조인철이 기습골로 허를 찔러 높은 콧대를 무너뜨렸다. 남북단일팀은 아르헨티나를 꺾은 덕에 8강에 진출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의 성적을 올려 사기가 충천했던 한국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에 1-4의 대패를 당하는 것을 붉은 악마의 일원으로 지켜봤다. 당시 박지성 등이 활약했지만 한국과 아르헨티나는 개인기량과 경기력 등에서 큰 수준차이를 절감케했다.

한국축구는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1983년 세계청소년 선수권대회 4강, 2002년 월드컵 4강에 오르는 성적을 올리기도 했지만 아르헨티나 등과 비교해 축구 수준에서는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U-20에서 이승우, 백승호 등이 보여준 탁월한 드리블 능력과 결정률 높은 골은 앞으로 한국 축구의 미래를 밝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오랫동안 훈련을 쌓으며 선진 축구를 익힌 젊은 유망주들은 축구 강국의 경쟁자들에게 당당하게 맞서며 자신들의 기량을 마음껏 펼치는 것에서도 이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성인대표팀들이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고전을 거듭하며 답답한 팬들의 속을 새까맣게 태웠던 것에 비해 열정과 젊음으로 무장한 태극전사 유망주들의 듬직한 모습에 한국축구의 희망을 걸어도 좋을 것으로 보인다. 마라도나, 메시가 청소년부터 도약했던 것을 봤듯이, 이승우, 백승호 등이 장차 한국을 넘어 세계무대를 호령하는 기대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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