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제발 살아 있으라.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고 졸음이 몰려오고 무섭더라도 희망의 끈을 놓치 말라’. 우리 모두의 간절한 염원이었건만 헛된 것이 되고 말았다. 안타깝고 슬프기 이를 데 없다.

바다밑바닥에 가라앉았던 내 자식, 내 형제 같은 46명의 천안함 장병들은 결국 죽음의 길을 가고 말았다. 아무리 목 놓아 부른들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4월 29일 평택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천안함 희생 장병들의 합동 영결식장은 하늘도 울고 땅도 우는 자리였다. 이날은 국가적인 ‘애도의 날’로 선포됐다. 25일부터 이날까지 이어진 애도기간 동안 전국의 분향소에는 애도의 물결이 끝없이 밀려들었다. 이는 우리 국민이 어려울 때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다. 어려울 때 마음을 모을 수 있다는 것, 하나가 된다는 것, 이것은 우리 국민의 위대성을 반영한다. 최고의 안보 자산이다.

애도 분위기와 영결식의 의미를 더욱 심장하고 비장하게 만든 것은 대통령의 임석(臨席)이다. 대통령의 임석은 휘하 장병들의 희생을 대통령이 얼마나 마음 아파하고 있는가를 웅변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할 유족들을 위무하는 것은 물론 슬픔도 함께할 것임을 보여주는 결의의 표시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이며 최고 사령관으로서 어려울 때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모습.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것을 떠안는 모습을 국민들은 눈여겨보았다. 대통령은 최근의 라디오 방송에서 희생 장병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 자신도 울고 국민도 울렸다.

대통령의 임석은 바로 그 때의 그 모습이며 그때의 심중(心中)이 일관됨을 말해준다. 누가 뭐래도 지도자의 이런 모습이 국민을 하나가 되게 이끌어 냈다는 것은 더 말할 것이 없다.

하늘과 땅과 함께 우리는 슬픔에 운다. 하지만 두려워 떨진 않는다. 떤다면 분노(憤怒)에 떨 뿐이다. ‘왜 이런 일이-.’ ‘누가 이런 짓을-.’ 분노의 전율 속에, 우리의 슬픔 속에 들끓는 용암에 비견할 무서운 국민적 에너지가 결집되고 있음을 느낀다.

두려워 떨어야 하는 것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극악무도한 짓을 한 소행자(所行者)다. 그들은 잠시 회심의 미소를 지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쯤은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날벼락 같은 천안함 사태에 대처하는 우리의 의외의 차분함과 침착함, 단호함을 예고하는 의연함과 성숙함, 국제적인 공조의 확산에 그들은 숨이 막혀 옴을 느낄 것이다. 진리의 말씀대로 그들은 뿌린 대로 거두게 될 것이다.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잊을 수 없을 것이다. 2010년 3월 26일 희망의 봄을 잔인한 봄으로 바꾸어 놓은 어처구니없는 천안함의 침몰 사태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서해북방한계선은 분쟁의 도화선이다.

이날 북녘 땅인 황해도 장산곶 코 앞 긴장의 섬 백령도는 강풍이 불고 파도가 거칠었다. 밤이 되자 바람과 파도는 더욱 사나워졌다. 그 캄캄한 밤 9시 20분 돌연 ‘꽝’ 하는 폭발음이 어둠을 찢었다. 동시에 초계활동을 펴고 있던 해군의 1200톤 천안함을 두 동강 내지 않았었나. 험상궂은 바다가 배를 삼켰다. 함미를 먼저, 함수는 천천히 삼키고 있었다.

인근에 있던 우군(友軍)의 초계함인 속초함이 명령에 따라 반격의 불을 뿜었었다. 레이다에 잡혀 눈에 보이는 미상(未詳)의 목표물에 강력한 주포 76밀리 함포를 동원해 5분간 130여 발을 쏘았다. 기민하고 본능적인 대응이었다. 자동사격통제장치로 작동되는 이 함포에 격파되지 않을 적은 없다.

살아 돌아갈 적도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목표물은 허탈하게도 새떼라고 했었지 않은가. 적은 필시 눈에 안 보이는 바다 속으로 은밀히 숨어들었던 것이 분명하다. 바다 속을 잘 살폈어야 했는데-. 그때는 당했지만 지금부터는 미꾸라지 한 마리도 스며들어올 틈을 주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해상 해저 공중 육상은물론 지하땅굴을 통한 도발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우리에겐 그럴만한 충분한 역량이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필사적인 구조 노력 끝에 함수에 타고 있던 천안함 장병 58명은 구조됐다. 함미 함수를 다 인양하고 나서 찾아낸 영웅들이 40명, 그러나 그들은 숨을 거둔 뒤였다.

아직도 6명의 영웅들은 합동으로 영결식은 마쳤지만 찾아내질 못하고 있다. 기필코 이들도 찾아내야 한다. 만의 하나 주검을 못 찾는다면 넋이라도 건져 올려야 할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고귀한 생명을 바쳐 지켜내려한 우리 모두의 마땅한 도리이며 국가의 의무다.

살아 돌아온 장병들은 전우를 뒤에 남기고 왔다는 죄책감으로 고개를 떨굴 것이 없다. 그대들은 전장에서 도망친 비겁자가 아니다. 죄인도 아니다. 나머지 장병들을 못 살릴 것은 그대들의 잘못이 아니다. 사력을 다한 구조노력으로도 어찌 할 수 없었던 불가항력의 자연의 심술과 위력 때문이었다.

그대들의 생환은 행운이며 기적이다. 심기일전, 자신과 가족의 행복, 국가를 위해 더욱 정진하고 헌신할 수 있어야 한다.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의 유가족을 돌보는 일에도 국민과 국가의 손을 잡고 동참하라. 이것이 진정한 전우애일 것이다.

정말 잔인한 봄이었다. 구조에 나섰던 UDT 대원이 순직하고 역시 구조현장에서 어선 금양호가 침몰, 선원들이 목숨을 잃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링스 헬기가 추락해 장병들이 순직했다.

사람의 목숨은 우주와도 못 바꾸는 것인데 그런 목숨을 조국을 위해 버렸다. 이 고귀한 희생들을 어찌 헛되게 할 수 있겠는가.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이에 보답하는 길은 무엇인가. 모두가 숙연하게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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