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뮤지컬 ‘밀사(연출 김덕남)’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공연 전막 시연에서 허도영이 열연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헤이그 특사 중 ‘이위종’ 삶 다뤄
영웅시·미화하지 않고 이야기

당시 7개 언어 능통한 지식층
국제협회 발언 후 종신형 선고

독립군 거쳐 러시아군 들어가
끝까지 일본군과 싸우다 숨져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한국에서 자라고 청소년기를 보낸 국민이라면 학교에서 헤이그 특사에 대해 익히 들어 귀에 익을 것이다. 1907년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헤이그에 파견한 사절 헤이그 특사. 우리에게 헤이그 특사에 대한 지식은 여기에서 그쳤다. 그들이 어떻게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됐는지, 무슨 생각으로 임했는지, 이후엔 무엇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서울시뮤지컬단(단장 김덕남)의 2017년 창작뮤지컬 ‘밀사-숨겨진 뜻(밀사)’가 1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막을 올렸다. 뮤지컬 ‘밀사’는 1895년 일본의 낭인들에게 명성황후가 시해당하고 1905년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이 고종을 위협해 을사늑약을 채결하는 등 일제 침략의 부당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파견된 헤이그 특사 이상설, 이준, 이위종의 활약을 그린다.

“지난번에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한 할머니가 흔들의자에 앉아 뜨개질을 하면서 옛날이야기를 한다. 이 할머니는 헤이그 특사 중 한명인 ‘이위종(허도영 분)’의 부인인 ‘엘리자베타(이연경 분)’다. ‘엘리자베타’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뮤지컬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895년 을미년 경복궁 명성황후가 일본 군사들 칼에 시해 당한다. 어린 ‘이위종’은 이를 목격하게 되고 두려움에 떤다. 법무대신·주미공사·주러대사를 역임한 아버지 ‘이범주(이경준 분)’를 따라 각국을 돌아다니게 된 ‘이위종’은 구한말 영어와 프랑스어, 러시아어를 비롯해 7개의 언어에 능통한 유일한 조선인이자 스무 살 청년이 된다. 러시아에 정착한 ‘이위종’과 친구들은 나라 잃은 조선을 생각하며 슬퍼하지만 술을 마시며 무도회장에서 놀기 바쁘다. ‘이위종’은 이곳에서 연인 ‘엘리자베타’를 만나 첫눈에 반하게 된다.

1905년 을사년 경운궁에서 ‘고종(한일경 분)’은 을사오적에게 조선의 외교권을 일본에 넘기라는 협박을 받는다. ‘고종’은 1907년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네덜란드 헤이그로 밀사를 파견한다. ‘고종’의 명을 받든 ‘고종’의 명을 받든 ‘이준(이승재 분)’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상설(박성훈 분)’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위종’을 만나 길을 떠난다.

▲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뮤지컬 ‘밀사(연출 김덕남)’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공연 전막 시연에서 허도영이 열연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이준’을 만난 ‘이위종’은 패기에 차 밀사가 되길 거부하지만 명성황후 시해 장면을 떠올리며 독립운동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특사 3인은 헤이그에 도착해 일제의 폭력적 침략을 호소하고 을사조약의 무효를 주장해 국권회복에 열강의 후원을 받으려고 하지만 한국정부의 자주적인 외교권이 인정되지 않아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다.

특사들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신문기자단의 국제협회에 참석해 발언할 기회를 얻었고, 외국어에 능통한 ‘이위종’이 ‘한국의 호소(A Plea for Korea)’를 절규해 공감을 산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일본은 분노해 고종을 폐위시키고, 특사 3인에게 종신형을 선고한다.

작품은 헤이그 특사 중 1명인 ‘이위종’의 사랑 이야기와 헤이그 특사 참여, 마지막 삶을 조명한다. 그는 헤이그 통역으로 시작해 연해주 독립군을 거쳐 러시아 군사학교에 들어가 일본군과 싸우지만 결국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숨을 거두는 비극적인 인물이다.

서울시뮤지컬단은 “이위종은 올해 탄생 130주년을 맞이하지만, 기념사업회(일성이준열사기념사업회,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 또는 박물관(이준평화박물관)이 건립돼 역사적 위상을 공고히 하는 이상설, 이준 열사와 비교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으며 역사적으로 보존된 자료로 미비하다”며 “뮤지컬 ‘밀사’를 통해 이위종의 생애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그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뮤지컬 ‘밀사(연출 김덕남)’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공연 전막 시연에서 배우들이 열연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밀사’는 열풍을 불고 온 뮤지컬 ‘영웅’과 같이 일제강점기 영웅기를 그리지만 화려하게 미화하거나 영웅처럼 떠받들진 않았다. 헤이그 특사 가운데 많이 알려지지 않은 20대 청년 ‘이위종’의 이야기를 전해 인상적이다.

‘ㄷ’모양의 테라스가 무대에 주를 이루고, 이 테라스가 열리거나 접히는 방법으로 변형된다. 무대 양 끝에는 사건의 년과 장소를 알려주는 글귀가 때에 따라 바뀐다. 배우들이 입은 의상의 디테일도 인상적이다.

하지만 공연의 축이 되는 이야기 개연성이 부족해 5장이 넘어갈 때까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더구나 ‘이위종’과 ‘엘리자베타’의 연애담이 극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집중력을 분산시킨다. ‘이범진’이 자결하는 장면도 설득력이 부족해 뮤지컬의 넘버 가사처럼 “왜 당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반짝이는 나라’ ‘반짝이는 것’ ‘반짝이는 아이’ ‘이 반짝이는 것이’ 등 연속되는 넘버는 관객이 혼란스럽게 한다. 공연은 오는 6월 1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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