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산 김진호 목사. (출처: 애산 김진호 홈페이지)

애산 김진호의 목회와 민족운동 조명 학술대회

[천지일보=차은경 기자] “나는 청진 소련 사령부에 붙잡혀 지하실에 감금되었습니다. 그 감옥에 조선인과 중국인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내가 엎드려 기도하는 것 보고 무엇 하는 것이냐고 묻습니다. 나는 이곳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과 기도하면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살리기도 하신다는 것을 말하였더니 자기들도 믿고 기도하겠다 하여 날마다 성경 강론과 기도로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그들은 기쁨이 충만하였고 그 자리는 곧 천당이 되었습니다.”

애산 김진호 목사(1873~1960)가 1958년까지 쓴 무화과 한글 설교집 6권에 기록된 글이다. 애산은 대한제국 말기의 한학자로서 일제 강점기 초기에 기독교에 입문해 상동교회 전덕기 목사와 신민회 활동을 하고, 정동교회 전도사로 있었으며 3.1운동 후 내리교회를 담임했다. 퇴직 후 궁정교회, 삼청교회를 담임하다 파송 받아 북한 청진에 가서 목회하며 6개 교회를 개척하고, 각종 중요 기록을 남겨 초기 한국기독교의 역사를 증거하고 있다.

23일 서울 서대문구 감리교신학대학교 백주년 기념관 중강당에서는 애산 김진호의 생애와 사상을 조명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애산 김진호의 목회와 민족운동’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로, 감신대 개교 130주년과 웨슬리회심 279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

애산은 경상북도 상주에서 1873년 10월 20일 가난한 가정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20대 말에 서울로 올라와 지내던 애산은 1905년 나라가 망해 가던 때에 상동교회 담임인 전덕기 목사를 만났고, 전 목사의 권유로 기독교로 개종했다.

1919년 애산은 배재학생을 통해 각국 영사관에 3.1독립선언서를 배부하는 일을 하다 일경에게 붙잡혀 심한 고문을 당했다. 서대문 감옥에서 지내다 6개월 후에 풀려나 1920년 인천 내리교회 담임으로 있었다.

1940년 감리교 파송을 받아 함경북도 청진교회로 가서 목회하며 6개 교회를 개척했다. 해방되고서는 소련군에 붙잡혀 심문을 당했다. 힘든 감옥 생활을 하다 1947년 풀려나 월남한 애산은 다시 궁정교회를 담임하다 6.25전쟁을 만났고, 1.4후퇴 때 부산 가덕도로 피난 갔다가 거기서 목회를 은퇴했다. 서울로 돌아와 부암동에 살면서 궁정교회 원로목사로 지내다 지병으로 1960년 소천했다.

이번 학술대회에는 김진호 목사 손자인 김주황 목사(애산교회 담임), 오세종 목사(예수원교회 담임), 이덕주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 한규무 교수(광주대학교)가 발제자로 나섰다.

▲ 23일 서울 서대문구 감리교신학대학교 백주년 기념관 중강당에서 ‘애산 김진호의 목회와 민족운동’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가 열리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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