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오른쪽)과 유영하 변호사가 각각 피고인석과 변호인석에 앉아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천지일보(뉴스천지)

朴-崔 법정서 눈 안 마주쳐
유영하 “추론에 기인한 기소”
재판부, 29일부터 병합 심리

[천지일보=김민아 기자] 삼성 등 대기업에서 총 592억원의 뇌물을 받거나 요구·약속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첫 정식 재판이 열렸다. 박 전 대통령은 주요 혐의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23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1차 공판을 열었다.

구속 상태인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 10분께 법원종합청사에 도착했다. 박 전 대통령은 남색 정장 차림으로 나왔다. 머리는 플라스틱 집게핀으로 고정해 올림머리를 유지했다. 구치감에서 대기하다 공판 시작 시간에 맞춰 법정에 출석한 박 전 대통령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전식 대통령으로는 역대 세 번째로 피고인으로 법정에 섰다. 최씨와 신 회장도 피고인석에 나란히 앉았지만, 모두 앞만 바라볼 뿐 시선이 마주치진 않았다.

이날 검찰에서는 박 전 대통령을 직접 수사한 이원석·한웅재 부장검사 등 8명이 출석했다. 검찰은 “이 사건은 박 전 대통령이 오랫동안 개인적 친분 관계를 맺어온 최씨에게 국가 기밀을 전달해 국정에 개입하게 하는 한편 권력을 남용해 개인이나 기업의 이권에 개입해 사익을 추구하고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지원 배제한 사안”이라며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고,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이러한 헌법적 가치를 지켜야 하지만, 피고인들은 사사로운 이득을 위해 적법절차를 무시하고 권한을 남용했다”고 비판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부 부인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는 “공소사실은 엄격하게 기소된 것이 아니라 추론과 상상에 기인해 기소됐다”며 “상당수 증거가 언론기사로 돼 있는데 참고자료 같으면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언론기사가 증거로 제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유 변호사는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및 대기업 출연금을 받은 뇌물수수 혐의는 동기가 없고, 최씨와 언제 어디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공모관계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주장을 폈다. 검찰과 특검이 작성한 공소장에 재단 설립 지시 시점이 다르다는 점도 지적하며 증거관계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지시,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 사직 지시 및 관여 혐의에 대해서도 부인했다. 유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박 전 대통령께서 블랙리스트에 대해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사실이 없다”며 “박 전 대통령이 좌편향 단체 등에 대해 어떤 말을 했더라도 그 말 한마디를 했다고 해서 지금의 블랙리스트가 작성되고, 일련의 과정까지 책임을 묻고 따진다면 살인범 어머니에게도 살인죄 책임을 묻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따졌다.

청와대 기밀 문건 유출 혐의에 대해서는 “최씨로부터 연설문 표현과 문구 등에 대해 의견을 들어본 사실은 있으나 아무 관계없는 인사 문제를 최씨에게 전달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은 유 변호사의 모두진술이 끝난 뒤 재판장이 “피고인도 부인 입장이냐”고 묻자 “네. 변호인 입장과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최씨는 “40여년 지켜본 박 전 대통령을 재판정에 나오게 한 제가 죄인”이라고 울먹이며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한 사실이 없고, 검찰이 무리하게 엮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 측에 70억원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신 회장 측도 “공소사실은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법리적으로도 의문”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다만 상세한 의견은 추후 문서로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 사건과 특검이 기소한 최씨의 뇌물 사건을 29일부터 병합해 심리하기로 결정했다. 특검과 검찰이 각각 기소한 사건을 하나로 병합한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으며, 공소사실이 완전히 일치하는 박 전 대통령과 최씨를 따로 심리하면 불필요하게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방어권 행사에 지장이 있고, 예단을 줄 우려가 있다는 박 전 대통령 측의 주장에 대해 “백지상태에서 충분히 심리하고 결론을 내릴 것”이라며 “최씨 사건에서 조사한 증거들은 박 전 대통령의 혐의를 판단하는데 효력이 없고, 병합 이후 이뤄진 증거조사만 효력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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