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권 작가의 ‘평화의 시대’. ⓒ천지일보(뉴스천지)

11명의 ‘덕후’들의 이야기
시대에 따라 인식 긍정적으로
전문가·능력자로 자리 잡아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마니아를 뜻하는 일본말 ‘오타쿠(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를 우리식으로 표현한 ‘오덕후’와 자신의 정체성을 외부에 공개하는 ‘커밍아웃’이 합쳐져 탄생한 신조어 ‘덕밍아웃’은 자신의 ‘오덕후’적인 성향을 주변에 공개하는 것을 뜻한다.

오늘날 ‘덕후’는 분야와 경계를 막론하고 자신의 관심 분야에 시간과 경험을 즐거이 투자해 전문적 지식이나 실력을 축적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확장되고 있다. 최근에는 학위 없는 전문가나 능력자 등이 ‘오덕후’라고 불리며 긍정적인 인식을 내포한 의미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이처럼 누구나 ‘덕후’적인 기질이 하나씩 있다. 기자도 10대에는 가수 H.O.T., 현재는 만화 ‘원피스’, 캐릭터 ‘키티’의 ‘덕후’다.

여기 ‘덕밍아웃’한 예술가들이 전시를 열어 눈길을 끈다. 서울시립미술관(관장 최효준)은 ‘덕후’ 문화를 화두로 한 ‘덕후 프로젝트: 몰입하다’전을 오는 7월 9일까지 서울 노원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개최한다.

▲ 김성재 작가의 ‘수집에서 창작으로’. ⓒ천지일보(뉴스천지)

미술관은 “일상 속 수집부터 ‘덕후’에 대한 재해석까지 참여 작가의 다채로운 작품을 통해 좋아하는 분야에 깊이 몰두하며 가지게 되는 기질이나 자세, 행동 양식의 의미를 조명함으로써 덕후 문화를 ‘몰입’이라는 교육적 가치와 연결해 살펴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작가 11명의 신작으로 구성된다. 창작의 모티브가 되거나 대중문화의 동향을 읽을 수 있는 수집(김성재, 박미나) 및 예술적 태도와 긴밀히 연결되는 취미 활동(김이박, 진기종), 영화・만화의 장면이나 연출 방식 등 관심 있는 특정 장르의 소재나 어휘를 차용한 작업(신창용, 이권, 이현진, 장지우), ‘덕후’에 반영된 고정 관념(조문기), SNS의 생산 소비 구조 속 유행의 유동적 속성에 대해 고찰(송민정) 등 참여 작가 고유의 언어로 펼쳐지는 다채로운 영상, 회화, 설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좋아하는 분야에 깊이 몰입해 생기는 작가들의 기질, 행동양식, 의미 등을 살펴본다.

▲ 고성배 작가의 ‘더쿠 메이커’. ⓒ천지일보(뉴스천지)

박미나 작가는 자신의 핸드폰을 10년간 장식했던 액세서리를 모은 기록을 소개한다. ‘2000-2009 핸드폰 액세서리’에는 과거 핸드폰 모델에 사용됐던 초소형 액세서리 소품들에는 당시 유행했던 만화・애니메이션 캐릭터와 같이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는 소재와 교통카드, USB 등 핸드폰 시장의 확산으로 생겨난 다양한 형태 및 기능이 반영돼 있다. 60㎝ 길이의 작품을 통해 지난 10년의 핸드폰 액세서리가 가지는 시대적 의미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김성재 작가는 수집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이야기 한다. 작가가 수집해온 다량의 피규어들은 캐릭터 디자인의 스케치부터 입체화까지 작품 구상에 지속해서 영감을 주며 창작 과정에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수집에서 창작으로’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캐릭터들이 시리즈별로 정리돼 있었다. 김성재는 “수집활동은 취미이자 창작의 시작이며, 피규어는 자신의 작업 전 과정에서 작품의 완성도를 가늠하게 하는 기준이자 창작을 이어나가도록 자극을 주는 존재”라 설명한다.

▲ 고성배 작가의 ‘더쿠 메이커’. ⓒ천지일보(뉴스천지)

김이박 작가는 ‘하엽 정리(싱글채널 비디오 1시간 11분 54초/1시간 35분 3초)’를 통해 식물 ‘덕후’로서 이야기한다. 작은 화분의 하엽을 정리하는 야무진 손길이 인상적이다. 앞서 김이박 작가는 식물과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기르는 식물이 병이 들었을 때 도움을 주며 정서적 유대를 형성해가는 ‘이사하는 정원’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간의 프로젝트와 식물에 대한 자신만의 정보가 담긴 아카이빙, 식물을 치유해주는 식물요양소 등의 작품을 재구성해 공개했다.

독립잡지 ‘The Kooh’의 편집장으로 ‘덕후’를 연구하는 ‘덕후’ 고성배 작가는 덕후의 습성을 10가지로 분류했다. 프로젝트 갤러리2에서 따로 진행되는 ‘더쿠 메이커’에서 작가는 “우리 솔직해집시다. 당신은 어떤 덕후입니까?”라고 묻는다. ‘덕후’의 특징이라고 여겨지는 행동이나 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루며 ‘덕질(덕후 행동)’에 대한 시각의 전환을 시도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더쿠 The Kooh’에 소개된 ‘덕후’의 습성 10가지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흔히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분야나 행위를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수행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특정한 것에 몰두한 사람을 ‘덕후’로 지칭하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의문을 제기하며, 누구나 자발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자신만의 ‘덕질 분야’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말한다. 당신들도 ‘덕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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