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직신(直臣)’이란 임금에게 직언하는 신하를 가리킨다. 여섯 가지 올바른 신하(六臣) 가운데 하나이며 제왕이 바른길을 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신하다. 임금에 대한 충성도나 강철 같은 가슴이 없으면 직신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직신들이 수난이 많았다. 사실 임금들은 사사건건 잘못을 들이대는 직신에게는 피로감이 없지 않았다. 면전에서 잘못을 간하다 죽은 신하들도 있지만 어전에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던 임금이 뒤로 가서는 측근들과 상의해 귀양을 보내거나 파면하여 보복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아야 직신이라고 했다. 직신은 대개 지금의 언론 역할이었던 간관(諫官)들에게 많았다. 조선 성종 대 문신 채수(蔡壽)는 폐비 윤씨를 옹호하다 미움을 샀다. 그는 관직을 버리고 내려가면서 임금에게 이렇게 아뢴다.

“전하께서 비록 직언(直言) 듣기를 싫어하시더라도 신하로서는 마땅히 끓는 기름 가마솥이라도 피하지 않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임금께서 잘못을 듣기 좋아하지 않으시면 사람마다 다투어 아첨하게 되는 것입니다.”

송강(松江) 정철은 풍류로 살았지만 직신으로 평가된다. 간관으로 있을 때 어명도 거역했다. 명종의 사촌형 경양군이 서얼인 처남을 때려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정철은 사간원 정언이었는데 임금이 ‘너무 사건을 확대시키지 말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정철은 끝까지 안 된다고 버텼으며 결국 명종의 미움을 사 한직으로 좌천됐다.

선조 즉위 후에도 정철의 대쪽 같았던 성품은 변하지 않았다. 선조는 송강의 관직을 삭탈하여 북쪽으로 내쫓았다. 정철은 떠나는 어전에서 ‘아무리 청천벽력과 같은 진노가 계시더라도 신은 말씀을 다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인조 때 간원 이성급의 간언이 문제가 돼 좌천될 위기에 빠지자 승정원에서까지 일어났다. “간관은 쓴소리를 하는 직입니다. 이 관직에 있는 자가 침묵한 채 구차하게 용납 받는 것이 충성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직언하여 거리낌이 없는 것이 참으로 임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중략)… 천둥과 벼락이 치면 꺾이지 않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이토록 엄하게 견책하시면 앞으로는 간관으로 있는 자가 전하를 위하여 하고 싶은 말을 숨김없이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숙종 대 잇단 정변으로 붕당의 우두머리들이 화를 입자 간관마저 조심하고 임금에게 상소하는 선비들이 없었다. 성군 정조는 이것이 자신과 나라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졌다. 임금은 특별히 교시를 내려 쓴소리를 당부했다.  - (전략)… 나라의 흥망은 오로지 언로(言路)의 개폐(開閉)에 달려 있는 것이며 언로가 막히고서도 나라가 망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중략) 안타깝게도 신공(臣公)들은 짐을 멀리하여 좋게 보이려고만 할 뿐, 충성스런 말을 하지 않는다. 언로가 폐쇄된 것이 과거에 요즈음 같은 경우가 있겠는가?(의역)…-

문재인 정부가 발 빠른 국정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통령의 안보관이나 일반 국민들과의 소통 등 활기찬 모습은 보수층에도 일단 안정감을 주고 있다. 비정규직문제로 인한 노조와의 갈등이 노정되고 있으나 언론은 비판보다는 축하해주는 분위기다. 그러나 용비어천가가 너무 오래 지속돼서는 안 된다. 잘못이 있으면 지적해 주고 바르게 잡도록 해야 한다. 언론은 비판이 생명이다. 언론은 목숨을 내놓는 쓴소리로 임금을 바르게 잡아 준 사간정신(司諫情神)을, 문 대통령은 과오를 지적해 달라고 유시까지 내린 성군 정조의 열린 마음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바르게 이끄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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