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은 도시의 경계이면서, 도성민의 삶을 지켜온 울타리다. 근대화를 거치면서 도성의 기능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한양도성은 서울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발굴과 복원과정을 거치면서 잃었던 모습이 되살아나고 있다. 최근 한양도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무산됐지만, 서울시는 2020년 재신청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양도성은 시대를 이끌어왔던 정신적 가치가 담긴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연재기사를 통해 한양도성의 문화적 가치를 알아보고자 한다. 

 

▲ 숙정문 인근의 성곽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일제침략 후 성벽 철거… 문루도 하나둘씩 사라져
광복 후 ‘도로확장’으로 광희문 옆 도로 없어져
한양도성 복원사업으로 훼손 멈춰… 시민에게 개방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오래된 성곽이라도 근대화 속에서는 변화되기 마련이다. 인구 증가로 도시 공간이 성벽 밖으로 팽창하고 새로운 교통수단이 등장해 도로가 신설·확장되면서 성벽의 군사적 가치가 감소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전 세계 많은 도시의 성벽이 근대화 과정에서 헐린 것처럼, 한양도성도 근대 도시화의 운명을 피할수는 없었다. 게다가 서울의 근대 도시화는 외세의 침탈과 맞물려 있었다.

◆전차 다니는 성문

1894년 조선 정부는 서울을 근대 국가의 수도답게 개조하는 사업을 본격화했다. 중심 대로인 종로와 남대문로 양변에 늘어서 있던 임시로 지은 집들을 철거하고 도로의 폭을 원래대로 회복했다.

1899년 돈의문에서 흥인지문을 거쳐 청량리에 이르는 노선에서 전차 운행이 시작됐다. 또 종로에서 숭례문을 거쳐 용산에 이르는 노선이 추가됐다. 성문의 실용성은 약해졌지만, 그 상징적 기능은 유지됐다. 정부는 1902년 숭례문과 돈의문 단청을 보수하는 등 도성의 체모를 지키려는 노력을 계속해나갔다.

▲ 남대문 앞으로 전차가 다니던 모습.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도성의 수난시대

그러다 도성은 수난시대를 겪는다. 1904년 러일전쟁을 도발한 일본은 한반도에 대규모 군대를 상륙시켜 서울을 점령한다. 그리고 한국을 식민지로 삼기 위한 준비를 진행했다. 1905년 일본은 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고 시정(施政) 개선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내정 간섭을 본격화했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키고 고종을 강제 퇴위시켰다.

위생상의 위협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숭례문과 흥인지문 밖에 있는 연못을 매립했다. 숭례문·소의문·흥인지문 부근의 성벽, 오간수문의 철책도 철거했다. 철거된 성벽의 부재는 도로와 건축공사의 재료로 사용했다.

문루도 하나둘씩 사라졌다. 1914년에는 소의문,1915년에는 돈의문을 헐고 그 문루와 석재를 건축 자재로 매각했다. 다른 성문들을 일부러 헐지는 않았으나, 퇴락하도록 방치해 1928년 혜화문 문루가 붕괴됐다.

1938년에는 도로를 확장한다는 명목으로 남아 있던 혜화문 육축마저 철거했다. 민간인이 주택을 지으면서 성벽을 훼손하는 일도 빈번했다. 도성의 권위를 표시하던 성벽은 퇴락하고 점점 허물어져 갔다. 1925년에는 남산에 조선신궁을 짓고, 동대문에 운동장을 만들면서 성벽은 자취를 감췄다.

▲ 숙정문 성곽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의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한양도성 복원사업 본격화

조선총독부는 1930년대 이후 식민지 지배체제가 안정됐다고 판단, 한반도 내 문화유산을 가급적 보존해야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당시 한양도성이 고적으로 지정됐지만, 도성을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광복 후에도 도성의 훼손은 계속됐다.

1961년 자유센터공사에 따라 남산 동쪽 자락의 성벽이 훼손됐다. 1966년 도로확장 과정에서 광희문 옆 도로가 사라졌다. 또 광희문을 고쳐 지으면서 남쪽으로 15m 이동했다.

한양도성의 추가적인 훼손은 1975년 한양도성 복원사업을 통해 멈췄다. 서울시 주도로 이뤄진 이 사업은 도성의 면모를 변화시켰다. 멸실된 구간의 성벽을 새로 쌓고, 무너진 부분을 보수하는 공사를 했다. 이로 인해 1982년까지 9.7㎞를 새로 쌓았다.1991년 봉수대 1개소를 복원했고, 1994년에는 혜화문을 새로 지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옛 도성 전체를 다시 잇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등재한다는 구상 아래 2012년까지 멸실되거나 무너진 구간의 성벽 2.3㎞를 새로 쌓거나 덧쌓았다. 이 과정에서 재료와 기술 등 여러 면에서 전통적인 축성 방법을 따르지 않아 문화유산의 진정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서울시는 한양도성 도감을 설치해 진정성을 우선하는 새 보전 관리계획을 수립, 시행토록 했다. 이에 한양도성 총길이 1만 8627m 중 현재 약 70% 구간의 복원작업이 완료됐다.

한양도성에 대한 시민의 관심이 커진 건 1994년 남산의 도성길이 정비되고 전면 개방되면서다. 그전까지는 한양도성을 복원해도 접근이 쉽지 않았다. 1996년에는 인왕산이 전면 개방되고, 2006년 백악길이 열렸다.

2008년 숭례문 화재사건 후 도성에 대한 시민의 관심은 급증했다. 현재는 한양도성 걷기를 통해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 길을 직접 걸으며 한양도성의 역사적 가치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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