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일단 그 작별이 국민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감동과 신선함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눈물을 글썽이며 떠나보냈다고 전해진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으로 활약한 양정철은 인간 문재인을 이 나라의 대통령 만들기에 멸사헌신(滅私獻身)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대통령이 되는 것이나 대통령을 만드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그 ‘대업(大業)’이 이루어질 때까지 그의 말마따나 고초가 따르는 ‘눈물 나는 시간‘을 허다하게 겪었을 것이 불 보듯 빤하다. 어떻든 대업이 성공하자 양 전 비서관은 문재인 정권의 창업공신이자 측근실세의 한 사람으로서 우뚝 부각되어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이래서 그가 문 대통령을 도와 국가경영에 동참할 것이라는 것에 대해 의심을 가질 만한 대목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의외의 소식이 전해졌다. 문 대통령이 그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초대한 청와대 만찬에서 그는 백의종군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이를 굽히지 않았다는 것 아닌가. 자리의 성격으로 보아 얼핏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양 전 비서관이 굳이 자신의 ‘희망’을 말하지 않더라도 문 대통령이 먼저 적극적으로 무슨 자리이건 권유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한 데 말이다. 따라서 양 전 비서관이 표명한 백의종군 의지가 그를 중용하려한 문 대통령의 의중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대통령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었다면 대통령이 적지 않게 당황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를 만류했으리라는 정황도 상상이 가능하고 눈에 보이는 것 같지만 백의종군 의지를 굽히지 않는 양 전 비서관에 설득돼 끝내는 눈물을 글썽이며 보내주기로 허락하고 말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결코 가능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어느 경우든 일찍부터 다정다감하기로 소문난 문 대통령이지만 그의 눈물은 양 전 비서관을 놓아줄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이었거나 진퇴(進退)의 때를 헤아리는 그의 깊은 심지(心智)와 진정성에 감동돼서일 것이라는 짐작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어떻든 이 ‘작별’의 장면이 국민에게는 신선한 감동으로 찡하게 전해져왔다는 것이 중요하다. 민심이 그렇다면 청와대에서 이루어진 이 경우의 ‘하직(下直) 인사’와 ‘작별’은 아주 이별하는 것도 아닌 것이지만 그런 선택은 문 대통령의 성공을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도 옳았다고 할 수 있다. 

양 전 비서관은 그가 만든 문 대통령을 그에 대해 가질 법한 무거운 부담에서 풀어주어 고른 인재 등용의 여지를 넓혀주고 국정에 전념하게 했다. 더구나 양 전 비서관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예의 주시하는 다른 측근 실세들도 줄줄이 등용(登庸)과 발탁의 욕심을 접고 이른바 공을 세우고서도 물러서는 ‘공성신퇴(功成身退)’의 용단을 발휘해줬다는 것이 주목된다. 얼른 보아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절대로 쉬운 결단일 수 없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했다. 당장 직전 대통령 정권이 측근 실세들의 국정농단에 무너져 국민의 가슴을 무너지게 하고 나라를 위태롭게 했다. 그렇기에 갓 출범한 문재인 대통령 정권에서 일어나는 측근 공신들에 의한 ‘공성신퇴’의 움직임들은 국민들을 크게 안도하게 하며 문재인 대통령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도 국민들의 희망을 키워주기에 충분한 일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등용의 기회가 아주 사라졌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왜냐하면 변화무쌍한 것이 정치여서 어느 국면에서는 이들이 문 대통령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에 국민이 흔쾌히 동의해줄 때가 있을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문 대통령에게 그들을 찾아 쓰는 일에 관한한 ‘전략적 인내’를 발휘해야 할 시기인 것이 분명하다. 예부터 임금이 명철(明哲)을 유지하면 신하들이 허튼 짓을 할 수 없었다. 임금이 밝으면 어두운 구석이 있을 수 없었다. 정치 시스템은 달라졌지만 지금이라고 무엇이 다르랴. 문재인 대통령은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시기에 국민들의 기우(杞憂)가 많았던 많은 문제에서 국민에게 친근하면서도 단호함과 유연성, 밝은 식견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특히 안보 문제에서 그러했다. 동맹국, 우방, 전략적 파트너들도 그를 신뢰하게 될 것이라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 주마가편(走馬加鞭)이지만 역대 정권들을 번번이 실패의 늪으로 몰아넣은 등잔 밑의 어둠까지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면 금상첨화다. 등잔 밑이라고 항상 어두우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양 전 비서관은 지인들에게 말하기를 ‘문 대통령을 잘 부탁한다. 이제 퇴장한다. 정권교체를 갈구했지 권력을 탐하지 않았다. 비워야 채워지고 곁을 내주어야 새 사람이 오는 이치에 순응하고자 한다. 시민 중 한 사람으로 조용히 지낼 것이니 잊힐 권리를 허락해 달라’고 했단다. 그가 드러내고 있는 이 가슴 미어지는 복잡한 심중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의 수신(修身)과 수양(修養)의 경지가 이런 정도라면 그는 ‘잊힐 권리’를 달라고 했지만 국민은 그를 ‘기억할 권리’를 달라고 반문할 것 같다. ‘사즉생(死卽生)’의 이치라는 것이 이런 것 아닌가.  

출세의 사다리를 오르느라 분망한 사람들이 이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있을까 확신이 가지는 않지만 당 나라 명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가 쓴 ‘감흥(感興)’이라는 시가 씹을 맛이 난다. 지금 세상은 그의 시와 거꾸로 가는 풍조여서 역설적으로 더욱 그러하다. 이렇다. ‘길흉이나 화복은 연유가 있어 오는 것이니/ 깊이 원인을 살피되 겁을 내지는 말라/ 불길이 윤택한 집을 태우는 것은 봤어도/ 풍랑이 빈 배를 뒤집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네/ 명예는 사회의 공기(公器)이니 너무 많이 취하려 하지 말아야 하며/ 이득은 내 몸의 재난거리이니 적당히 탐내어야 한다네/ 사람은 표주박과는 달라서 먹어야 살지만/ 대강 배가 부르면 일찌감치 그만 먹어야 옳지(吉凶禍福有來由/ 但要深知不要憂/ 只見火光燒潤屋/ 不聞風浪覆虛舟/ 名爲公器無多取/ 利是身災合少求/ 雖異匏瓜難不食/ 大都食足早宜休; 길흉화복유래유/ 단요심지불요우/ 지견화광소윤옥/ 불문풍란복허주/ 명위공기무다취/ 이시신재합소구/ 수이포과난불식/ 대도식족조의휴). 이같이 빈 배가 풍랑에 뒤집히진 않지만 욕심이 꽉 찬 사람은 뒤집힌다. 명예는 사회의 공기라지 않는가. 남의 몫까지 욕심내면 안 된다는 뜻이다. 이득 또는 먹는 것을 지나치게 탐해도 안 된다. 이런 이치가 있기에 대통령이 명철을 시종 유지하는 가운데 휘하 일꾼들이 백거이가 말한 대로 탐욕을 부리지 않으면 국민은 고생할 일이 없으며 나라가 어려워질 까닭도 없다. ’공성신퇴‘의 선언이 줄을 이었다. 그것이 그 출발이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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