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약이라기에

송길자

두 눈 질끈

감았다 뜨면
다시 새날이려니

세월이
약이라기에
소태 같아도 삼켜왔는데

눈물은
슬픔의 언어
고독은 방부제 같네

 

[시평]

흔히들 세월이 약이라고 말한다. 어떤 어려운 일을 겪을 때, 의례적으로 어른들이 위로하는 말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세월은 마치 여과제와 같은 것이어서, 그 세월이라는 여과장치를 통과를 하고나면, 아팠던 일도, 괴로웠던 일도, 힘이 들었던 일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모두 모두 씻기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것 또한 있다. 아무리 긴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앙금 같이 남아서, 어떤 계기만 만나게 되면 꾸역꾸역 되올라오는 것. 그런 것도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러나 세월이 약이라는 그 말, 그대로 믿고, 그 세월을 약이라고 두 눈 질끈 감고 삼켜 잊어버리려고 했는데, 그래서 소태 같이 쓰디쓴 그 세월이라는 약을, 넘어가지 않는 목울대로 넘기려고 했는데.

그래, 눈가에 고이는 눈물은 다름 아닌 슬픔의 언어.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그 슬픔의 언어. 그래서 홀로 안고가야 하는 고독은 방부제와 같이, 아픔도 슬픔도 사라지지 않게 하는 방부제와 같은 것이기에, 오늘도 그 아픔, 그 슬픔 그대로 지닌 채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아픔, 그 슬픔을 안고 사는 삶, 그 삶 또한 아름다운 것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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