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순신 장군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死卽生 生卽死)” … 나라 생각하는 마음 깊었던 충무공

[뉴스천지=서영은, 김현진 기자] “싸움이 한창 급하니 나의 죽음을 결코 적에게 알리지 마라! 군사들을 놀래게 해서는 안 된다.”

임진왜란 당시 노량해전에서 적의 총탄을 맞아 죽음을 맞이한 순간에도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지키고자 했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마지막 음성이다.

백성으로서, 군사로서 충무공의 나라를 향한 충성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이 같은 사실은 이 충무공이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날인 1592년 5월 1일부터 전사한 1598년 10월 7일까지 생전에 기록했던 <난중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死卽生 生卽死).” “나라에 충성을 바치려했건만 이미 죄에 이르렀고, 어버이에게 효도하려 했건마는 돌아가셨다.” 등 충무공의 어록을 보면 나라와 부모를 염려하고 생각하는 마음이 깊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난중일기>는 이 충무공의 개인적인 정신세계나 사상은 물론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에 대한 사실적 기록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일기의 진실성과 함께 예술적으로도 매우 뛰어난 평가를 받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친필 등 여러 가지 요건으로 <난중일기>는 국보 76호로 지정됐으며, 현재 충남 아산 현충사에 친필초고본이 보관돼 있다.

◆ 충무공 동상 광화문광장에 서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우뚝 서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像)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1968년 4월 27일 건립됐다.

세종로 사거리, 광화문광장에 충무공 동상이 세워지기까지는 여러 에피소드가 섞여 있다. 에피소드라기보다는 암울했던 역사적 사실이 이순신 장군 동상을 충무로가 아닌 광화문광장에 우뚝 서게 만들었다.

1968년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본이 철거했던 광화문을 한양 궁궐의 위상을 찾아보자는 의미로 복원 공사를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엉뚱한 장소로 복원하고 말았다. 원래의 한양 땅 상징 축선에 맞게 북한산과 관악산을 잇는 축선에 복원돼야 북한산-경복궁 근정전-광화문-숭례문-관악산이 일직선상에 놓이게 되는데 복원된 광화문은 제자리에서 한참 벗어난 위치인 메이지왕을 모셨던 일본인의 신궁 터를 향해 복원된 것이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일본의 기(氣)를 누를 수 있는 방도로 이순신 장군 동상 건립을 지시하게 됐다. 당시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에서는 세종로에 ‘세종대왕 동상’을 세우자고 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백전백승으로 일본을 격퇴한 이순신 장군을 일본이 가장 무서워할 것”이라며 최종적으로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울 것을 지시했다.

동상은 형상의 완전한 사실보다는 그 인물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강조해 조각됐는데 당시 역사를 후대에 전승시켜야 한다는 고 김세중 작가의 희망으로 새로운 충무공의 모습이 탄생되게 됐다. 이러한 상징적 표현 자세를 택하게 된 배경은 국가중심으로 통하는 길목에 놓일 호국성 웅상이라는 위치와 인물의 특성이 지니는 맥락 때문이다.

동상을 관리하는 한 관계자는 “충무공이 지키고 있으니 무서울 게 없다.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를 우습게보지 못할 것”이라며 “외국 관람객들이 이순신 장군의 눈을 보고 카리스마를 느끼고 돌아간다. 그건 한국 역사를 인식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처음 이순신 장군 동상의 높이는 5m로 계획됐으나, 세종로 폭이 100m로 확장되면서 동상의 높이도 1.5m 높아진 6.5m로 변경됐다는 비화가 공개되기도 했다.

◆ 충무로엔 충무공이 없다

1545년 4월 28일 서울에서 태어난 이순신 장군. 조국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충무공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46년 10월 1일, 그가 태어난 곳에는 그의 시호를 딴 이름이 붙었다. 1960~70년대 충무로는 문화․예술 영화인의 거리로 유명해지기 시작해 아직까지도 충무로엔 문화 예술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충무로를 지나던 대학생 강민지(22) 양은 “충무로가 충무공과 관련이 있다는 건 학교에서 배워서 아는데 자세히는 모른다. 예전부터 영화의 거리, 예술의 거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만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철균(32) 씨는 “충무로 하면 영화 생각이 먼저 나지 이순신 장군이 떠오르진 않는다”며 “영화인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기 때문에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충무로가 문화예술인들의 거리로 인식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현상에 서울역사박물관 김문택 박사는 “충무로에 역사적인 이미지를 전달하고자 한다면 이순신 장군을 상징하는 기념물이나 조각, 더 나아가 기념관이라도 하나 있어야 사람들의 인식이 다양화 될 것 같다”면서 “서울의 역사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도가 낮은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는 28일 충무공 탄신일을 맞아 서울 광화문광장에 이순신 장군의 생애와 업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충무공 이야기’ 전시공간이 마련된다.

안승일 서울시 문화국장은 “광화문 광장에 이순신 장군 동상만 있고, 정작 장군의 애국충정 등을 전달할 스토리텔링이 없다는 지적에 따라 기념관을 추진하게 됐다”며 “충무공 이야기는 세종 이야기와 함께 광화문광장을 역사 현장으로 되살려 ‘시민을 위한 살아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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