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매년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1958년 충남 강경여자중고등학교 청소년적십자 단원들이 퇴직했거나 병을 앓고 있는 선생님을 찾아 봉사활동을 했는데, 이를 기념해 청소년적십자에서 1963년 5월 26일을 스승의 날로 정하고 사은행사를 한 게 시초였다. 1965년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을 교권존중과 스승공경의 풍토를 조성하고 교원의 사기진작을 위해 기념일로 지정했다. 1973년 서정쇄신방침에 따라 ‘스승의 날’이 폐지됐으나, 9년 만인 1982년 다시 부활돼 올해가 36년째다. 어찌된 일인지 해가 거듭할수록 즐거워야 할 기념일이 점점 퇴색되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교사들을 대상으로 스승의 날 폐지 찬반 투표를 하면 압도적으로 폐지를 원할 정도로 1년 중 가장 곤혹스러운 날이 돼 버렸다. 근로자의 날은 근로자가 쉬어 행복한 날이고, 어린이날은 어린이가 선물을 받아 행복하고, 어버이날은 어버이가 효도를 받아 행복한 날이다. 5월에 있는 기념일 중 유독 스승의 날만 당사자인 교사들이 행복하지 않고 불편한 날이 돼 버렸다.

교사들이 원치 않는 기념일을 존속하며 ‘남의 제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듯이 5월만 되면 교사들을 때리고 흔들면서 불편하게 한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연례행사처럼 매스컴에서는 백화점상품권과 선물을 사며 고민하는 학부모의 인터뷰를 내보낸다. 교육청은 “감찰반을 편성해 뇌물, 향응 등을 받는지 복무실태 특별점검을 한다”고 ‘협박성 공문’을 보내며 모든 교사를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을 한다. 누구를 위한 스승의 날인지 도무지 가늠하기 힘들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지네 (중략)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대한민국에서 학교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불러봤음직한 ‘스승의 은혜’ 노래 가사다. 10여년 전까지 학교마다 이 노래를 부르며 스승의 날 행사를 했다. 학생회 주최라고 하나 실상은 교장이 지시하고 학생회 교사가 학생들을 동원해 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스승의 날, 담임과 비담임을 교무실 책상에 놓인 꽃과 선물꾸러미로 구분할 수 있었다. 고가의 상품권과 선물은 강남의 이야기이지만 보통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마련한 잡동사니 선물들이 쌓였다. 자녀를 맡기는 입장에서 학부모들은 늘 ‘을(乙)’의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어 웬만한 강단이 아니면 선물을 안 챙겨 보내기 힘들었다. 담임들은 받은 선물을 학교 기사나 비담임들에게 나눠주는 미덕(?)을 보이기도 했다. 교장이 재력 있는 학부모회장과 결탁해 마련한 고깃집 식사자리도 아무렇지 않게 마련됐고 교내에 비싼 뷔페가 차려지기도 했다. 젊은 교사들부터 그런 자리나 선물을 사양하는 풍토가 확산되기 시작하며 대다수 교사들은 옆구리 찔러 절 받기 같은 불편한 행사를 반기지 않았다.

어느 순간 서로 불편하다 보니 한때 중고등학교 간 폭탄 돌리기까지 유행했다. 고등학교는 이 날을 ‘모교 방문의 날’이라고 정해 학생들을 중학교로 보내고, 중학교는 이날에 수련회나 백일장 등의 행사를 열어 외부로 나가 학교를 비워 버렸다. 모교를 찾은 학생들만 중간에 ‘붕’ 떠버려 PC방 사장님이 큰 수입을 올리는 날이 됐던 적도 있다.

학교에서 정규 수업을 하는 학교의 교사들은 더 곤혹스런 상황에 놓인다. 졸업생들이 단체로 몰려와 “선생님 짜장면! 탕수육!”을 외치며 교무실을 점령하고 가지 않는다. 좀 서운하게 대하면 “야! 중학교 때 담임 정말 병맛-형편없다는 신조어-이다. 짜장면도 안 쏜다”며 SNS가 난리가 난다. 감사는커녕 염치마저 없이 ‘뵈러 온 것만 해도 기특하죠?’란 태도를 보이는 제자들에게 울며 겨자 먹기로 삥을 뜯기듯이 당한다. 학교 다닐 때 찾아오던 제자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들이 경제활동을 하게 되면 발길을 끊는 게 정설이다.

흔들리는 교권 탓에 존경과 사랑의 의미가 가신 스승의 날은 ‘교사들에게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러운 날’이 돼 버렸다. 스승의 날 본연의 뜻을 되찾기 힘들게 된 세상에서 굳이 스승의 날을 꼭 이어가야 하는지 의문이다.

폐지하기 힘들다면 근로자의 날 같이 교사들이 쉴 수 있는 휴일로 만들어 현재 스승이 아닌 ‘옛 스승 찾아뵙기 운동’을 전개해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고, 은퇴한 스승 중 병고와 생활고 등에 시달리는 이들을 찾아 위로하는 날로 승화시켜 가길 많은 교사가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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