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신경정신과 전문의 손석한 박사
전문가에게 듣는 정신건강이야기

[뉴스천지=송태복 기자] 우울한 소식이 무척이나 많이 들린다. 사고로 가족을 떠나보내고, 때론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망자의 뒤를 따랐다는 소식은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세계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나라로 다섯 손가락 안에 이름을 올린 대한민국. 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라는 명예와 더불어 인터넷 게임 중독에 대한 잠재적 문제도 가장 크게 안은 대한민국에서 정신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슬플 땐 자연인으로 돌아가 슬퍼하자

▲ ⓒ천지일보(뉴스천지)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43) 박사를 만난 날은 우연히도 故 최진영 씨의 자살소식이 전해진 날이었다. 손 박사와의 인터뷰는 자연스레 故 최진영 씨의 자살이야기로 시작했다.

손 박사는 “故 최진영 씨의 죽음은 누나(故 최진실)를 누구보다 의지했음을 의미한다”며 “자신이 살아 있음에 강한 미안함과 자책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또 “누나와 비슷한 모습으로 자살한 것도 누나를 동일시해 따라가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손 박사는 “많은 이들이 극한의 상실감을 경험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건 병적 우울 단계로 진행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병적 우울로의 진행을 효과적으로 막는 방법은 바로 언어적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손 박사는 “남은 가족의 상실감을 극복하게 하려면, 가족을 잃어 얼마나 힘들었는지 물어보고 그 슬픔을 온전히 토해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연예인과 같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공인은 충분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힘들다”면서 “그러나 반드시 자연인으로 돌아가 망자에 대한 슬픔을 표현하는 기회를 가져야 하며, 이때는 반드시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변에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이 없을 때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손 박사는 우리 사회가 자살이나, 죽음 등 부정적 언어를 금기시하는 것도 자살률을 높이는 원인으로 지적했다. 그는 “죽어 버리겠다고 말로 표현하는 사람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며 “부정적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쉽고 효과적인 자살 예방법”임을 강조했다.

또한 “자살을 생각한 사람들은 아주 구체적으로 자살을 계획하기 때문에,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오히려 자살에 대한 계획을 자세히 묻고 확인하는 것이 최선의 자살 방지책”이라고 설명했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어떤 방법으로 자살을 하려는지 묻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자살의 당위성이 희석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최진실 남매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우리 사회 곳곳에 잠재돼 있다는 것이다.

손 박사는 “맞벌이 가정에서 아이들끼리 잘 지낸다고 방치하면 결국 아이들 마음에서 부모의 자리가 사라져 형제를 상실한 경우 부모의 위로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맞벌이 부부라도 자녀가 부모에게 의지할 여지를 줘야 한다”며 “귀가 후 자녀에게 오늘 하루 엄마, 아빠가 없는 동안 무엇이 가장 힘들었는지 말로 표현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에게 부모가 그들의 버팀목이 되고 있음을 인식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ADHD·인터넷 중독 예방법
손 박사가 가장 많이 접하는 내원환자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증상을 보이거나, 인터넷 게임 중독 증상을 보이는 소아 환자다.

ADHD 환자의 주요 증상은 끊임없이 말을 하고, 방황하거나 계속 안절부절못하고, 아주 불안스럽게 보이며 일반적으로 욕구불만을 잘 견디지 못한다. 또한 이런 아동은 다른 아동을 때리고, 괴롭히며, 타인에게 간섭하는 버릇이 있다. 정서변화가 심하고 분노표출이 과격하며 좌절을 견디는 능력이 약하며 인내와 끈기를 요구하는 학습과제 수행에 약하기 때문에 학업부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손 박사는 ADHD의 원인은 많은 경우 학업스트레스라고 말했다. 특히 엄마들의 욕심으로 이뤄지는 영어공부로 인한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사회 부적응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그는 “ADHD환자와 더불어 사회적 문제로 번지고 있는 인터넷 게임 중독 예방을 위해서는 부모의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손 박사는 “인터넷 게임 중독에 빠진 아이들은 학업 등 본연의 과제에 집중하지 못한다”면서 “인터넷 게임을 그만두게 했을 때 난폭해지고, 다른 과제를 수행하지 못한다면 인터넷 게임 중독일 가능성이 크고, 반드시 전문가 상담이 필요하다”고 했다.

인터넷 게임 중독은 뇌에서 쾌감을 주는 신경전달 물질인 도파민이 지속적으로 분비되는 상태로 단순히 습관의 변화가 아니라 뇌기능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런 뇌 상태는 마약 중독이나 니코틴, 알코올 중독증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지속적인 환각상태와 같다.

인터넷 게임 중독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 강압적으로 인터넷 게임을 중단시키면, 알코올 금단 증상이나, 마약 금단 증상과 같이 매우 불안정해지고 폭력적이 되는 특징이 있다.

이런 취약성은 타고난 부분도 있지만 어릴 때 노출될수록 중독성이 심각하게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다.
문제는 인터넷 게임 중독에 빠진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와 사이가 매우 나쁘다는 것이다. 부모의 명령이 먹히지 않고 부모가 하지 말라면 게임을 더 하거나, 보란 듯이 나가서 PC방을 전전한다. 이런 이유로 인터넷 게임 중독은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 개선이 선행돼야만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

손 박사는 가정에서 자녀의 인터넷 게임 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가장 손쉽고 중요한 방법은 규칙을 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부모와 얼마 동안 할 것인지를 게임 전에 정하고 그 시간을 엄격하게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서울가정법원 정신감정 전문위원도 맡아 비행청소년의 정신감정을 하고 있다. 손 박사는 “상담과정에서 비행청소년이 좀 더 일찍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면 그들의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을 너무 많이 느낀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몇 년 전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엄마가 데려온 아이가 있었다. 검사를 해보니 아이의 지능은 정상인데 후천적 학습 능력이 떨어진 걸 알게 됐다. 부모의 가정불화로 아이가 제때 적절한 언어 환경에 노출되지 못한 결과였다. 가족치료를 시작했고, 가족관계가 개선되면서 아이도 극적으로 좋아졌다”며 건강한 가정이 정신건강의 근간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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