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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첫 등장은 확실치 않아
선, 서적중개상 ‘책쾌’ 활동

수요 계속되자 세책점 생겨
소설책 읽어주는 전기수도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여보시오, 이 마을에 하한수라는 사람이 살고 있소(책 구매자)?” “그렇소만…, 당신도 책 사러 오셨구려(마을 주민).”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소(책 구매자)?”

“하한수 집은 저쪽 수표교 아래라오(마을 주민).”

1576년 선조 임금 때 발행된 ‘고사촬요’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 같은 글이 있다. “이 책을 사고 싶으면, 수표교 아래 북쪽 수문 입구에 있는 하한수의 집으로 찾아오시오.”

이는 조선시대에 민간인의 집에서 책을 판매했다고 기록된 최초의 내용이다. 조선시대에는 지식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있지만, 책을 구하기는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양반 특권층에게만 책이 필요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책은 어떻게 백성에게 보급된 걸까.

◆책값 대신 쌀·콩 교환한 기록 남아

우리나라에 서점이 언제부터 존재하였는가는 아직 정설은 없다. 하지만 곳곳에 책을 팔았다는 내용은 남아 있다. 1435년(세종 17)에 올린 허조(許稠)의 계(啓)에는 “책값 대신 쌀이나 콩으로 ‘소학집성’을 교환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1457년(세조 3)에 승정원에서 교서관에 있는 오경(五經)을 팔았다는 기록이 있고, 1470년(성종 1)에 한명회가 교서관에서 책을 팔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교서관은 조선 정부에서 운영하는 관영서점이었다. 교서관에서는 한문책을 한글로 번역해 여러 권을 찍었다. 읽기 편한 한글책을 많은 사람에게 보급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교서관에서 돈을 받고 책을 판매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책 전국 돌며 파는‘ 책쾌’ 등장

조선시대에는 ‘책쾌’가 등장했다. 책쾌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책을 팔던 서적중개상이다. 책쾌에 대한 기록은 유희춘이 쓴 ‘미암일기’에 처음 등장한다. 1567년까지 일을 세세히 적은 이 책에는 서적을 거래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중 이름을 날린 이가 바로 ‘조신선’이다. 한양에서 ‘조신선을 모르면 간첩’일 정도였다고 한다. 정약용과 조수삼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문인도 그에 대해 기록을 남긴 걸 보면 조신선은 엄청난 책쾌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신선은 한양 곳곳, 즉 시장이나 의원집, 양반집 등을 막론하고 책을 원하는 이가 있는 곳이면 고위 여하를 막론하고 어디든지 달려갔다. 조신선처럼 책쾌 중에는 한양을 활동무대로 삼은 이가 있었던가 하면, 전국을 무대로 지방과 한양을 오가며 서책을 판매한 이도 있었다.

◆세책점 생기고, 방각본 등장

책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가 계속되자 전문적으로 책을 필사하는 직업이 생겼고, 이런 책을 빌려주는 세책점도 생겨났다. 필사만으로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자 민간에서 목판으로 찍어 판매하는 책이 등장했는데 이를 ‘방각본’이라고 한다.

1576년에 찍은 ‘고사촬요’란 책은 하한수가 판에 새긴 것으로, 사고 싶은 이는 수표교 아래로 오라고 했다. 이밖에도 소설이 인기를 끌면서 소설책을 읽어 주고 돈을 받는 전기수도 생겨났다.

오늘날 같은 서점이 생긴 건 조선 말기에 이르러서다. 외국에서 신식 인쇄기를 들여오면서 출판사가 생겨났다. 동시에 소학교가 곳곳에 생기면서 교과서를 판매할 서점이 필요하게 됐다. 이에 전문적으로 책을 판매하는 상점이 조선에 문을 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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