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준 국조단군봉안회(사) 총무이사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은 복을 많이 받고 태어나 모를 것이나, 60년대까지만 해도 간혹 들어본 경험이 있을 법한 ‘고시례’란 일종의 풍습이 있다. 지금도 농촌에서는 이러한 풍습을 간간히 볼 수 있다.

농사를 짓는 시골. 들에서 점심을 먹던 여름철 들 풍경을 되살펴보자. 논에서 한창 일을 하고 있어 때가 되면, 논의 안주인인 아낙이 머리에 여러 사람이 먹을 점심을 이고 나타난다. 이윽고 들 가장자리 두렁에 음식을 펴놓고 ‘밥을 먹고 하라’고 부른다. 마침 지나가던 사람이 있으면 알건 모르건 같이 먹자고 권하곤 했던 것이 눈에 선하다.

모든 사람들이 좌정을 하고 음식이 바가지에 담겨 배당이 마쳐지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저마다 “고시례~” 하며 숟가락으로 밥을 한 술을 먼저 떠서 아무데나 던진 다음에 식사를 했다.

고시가 과연 무엇인가. 왜 우리 민족은 이러한 풍습을 계속해 왔을까. 그 역사적인 증거는 신라시대 안함노(신라 진지왕 2년~선덕여왕 9년, 서기 578~640)가 지은 삼성기(三聖紀) 중에서 단군왕검에 관한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단군왕검의 존재를 기록한 구절 후반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命彭虞闢土地(명팽우벽토지) 成造起宮室(성조기궁실) 高矢主種稼(고시주종가) 臣智造書契(신지조서계) 奇省設醫藥(기성설의약) 那乙管版籍(나을관판적) 羲典卦筮(희전괘서) 尤作兵馬(우작병마) 納菲西岬河伯女爲后(납비서갑하맥녀위후) 治蠶(치잠) 淳厖之治(순방지치) 熙洽四表(희흡사표).

해석을 하면 이렇다. 팽우(彭虞)에게 명하시여 땅을 개척하도록 하여 궁실을 짓게 하였으며, 고시(高矢)에게는 농사짓는 일을 주관하도록 하셨고, 신지(臣智)에게 명하여 기록물을 주관하도록 하였으며, 기성(奇省)에게는 의약을 준비하게 하였고, 나을(那乙)에게는 판적을 관리하도록 하였으며, 희전(羲典)에게는 점치는 일을 관장케 하고, 우(尤)에겐 군마를 관장케 하였다. 비서갑(菲西岬) 하백의 딸을 거두어 아내로 삼고 누에치기를 다스리게 하니 순방의 다스림이 온 세상에 두루 미쳐 태평치세를 이루었다.

단군왕검의 치세방법이 잘 나오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 중 두 번째로 기록된 인물이 있다. ‘高矢主種稼(고시주종가)’ 즉 고시(高矢)에게는 농사짓는 일을 주관하도록 하셨다에서 등장하는 ‘고시’다.

바로 옛 선조들은 우리 민족에게 농사를 장려하고 그 농법을 알려준 고시(高矢)에게 고마움을 표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월의 흐름은 사람들의 의식까지 변화시킨다 하지만, 변화만이 능사는 아니라 생각한다. 우리 자신을 정확히 알고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정체성만은 변치 말아야 할 것이다.

요즘은 농경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농경의 중요성은 간과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농사의 중요성을 잊으면 안 될 것이기에, 농사일에 국한하지 말고 야외에서 공동으로 식사하는 자리 등에서 ‘고시례~’란 의미를 되새기고 아예 부활시켜봄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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