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선거철이 되면 도심 거리마다 후보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난무하고, 시민들이 자주 보행하는 곳곳의 벽에는 출마자들의 경력·공약과 핵심 문구가 담긴 벽보가 행인들의 눈길을 끈다. 이번 대선도 예외는 아니어서 각종 홍보물이 넘쳐나는데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선거벽보다. 중도 하차한 후보자의 벽보까지 포함해 모두 15명 얼굴이 나붙은 벽보가 장미대선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거리를 지나다니다가 벽보를 보면 평소엔 이름을 듣지 못한 정당들도 꽤 많다.

대다수 사람들은 정당이라 하면 원내정당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이번 대선에서 후보자 초청 TV토론회도 원내정당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단골 뉴스도 기호 1번에서 5번까지 정당과 관련된 보도들이 나오고 있으니 여타 정당은 자연히 등한시된다. 우리나라는 정당국가다. 그런 만큼 정당이 많은데 4월말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정당은 모두 35개이다. 이 가운데 원내정당이 6개이고 나머지는 원외정당으로서, 올해 등록된 정당만 해도 일곱 개에 이른다.

이번 대선에서는 35개 정당 가운데 12개 정당이 최종 후보자를 냈다. 현재 활동 중인 정당의 3분의 1이 후보자를 낸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대선 후보를 낸 정당에 대해 지원하는 선거보조금을 지급받은 정당은 6개에 불과하다. 국고보조금 총액 421억원 중에서 민주당이 123억 5700만원으로 가장 많고, 새누리당이 3200만원으로 최소 금액이다. 이와 같이 선거보조금 차등 지원은 국회의원 수에 따라 지원해주기 때문인데 오래전부터 형평성 문제가 있어왔다.

대선뿐만 아니라 어느 선거라도 정당과 후보자가 쓰는 비용이 선거 판세를 좌우하고 있다. 13명이 출마한 이번 대선에서는 선거비용에 따른 빈부 차이가 너무 크다. 선관위가 밝힌 19대 대선 선거비용제한액은 509억 9400만원이다. 이 범위 내에서 대선 후보가 법정 득표율 이상이면 사용한 선거 비용을 보전 받도록 되어 있는 바 15% 이상 득표 가능 정당에서는 전액을 받을 수 있어 좋겠지만 군소정당이나 무소속 후보자는 선거 비용에서 한 수 지고 들어간다.

이런 현상은 지난번 선관위에서 세대별로 보낸 투표안내문·선거공보에서도 잘 나타났다. 선관위 우편물에는 투표통지표와 네 명 후보자의 전단 홍보물이 들어있었다. 후보자 9명이 한 장짜리 전단지를 만들 재정적 여력이 되지 않아 세대별 홍보 기회를 포기했다는 것인데, 유승민 후보나 심상정 후보도 그런 경우였다. 한 장짜리 전단지를 만들려고 해도 전국 2158만 유권자 세대에 배부하려면 적어도 8억원 정도가 소요된다. 선거비용을 보전받지 못할 처지에 놓인 후보는 전국 유권자들이 가정에서 읽어볼 수 있는 기회를 어쩔 수 없이 포기하게 된 것이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사례가 또 있다. 후보자는 선택사항인 전단지 이외에 각 세대에 의무적으로 보내야 하는 선거공보물을 16면까지 만들 수 있다. 군소정당의 다른 몇몇 후보도 그랬지만 이재오 늘푸른한국당 후보가 전국의 각 세대에 보낸 한 장짜리 선거공보물이 논란이 됐다. 얼마 전, 모 신문의 논설위원이 “선거공보물이 왜 이래?”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재오 후보의 한 장짜리 공보물을 두고 “한때 실세로 불렸던 그의 화려한 경력과 초라한 선거공보물이 오버랩됐다”면서 “달랑 한 장이라니 유권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했다”는 글을 올린 게 빌미다.

이와 관련해 이 후보는 기자회견에서 “장당 5원짜리 공보물을 전국 가구에 배포하는 데 1억이 들었다” 말하면서 언론은 강자의 주장에 몰입하지 않고 소수와 약자의 주장에도 귀담아 듣고 글을 써야 하는데 ‘달랑 한 장짜리, 유권자 예의 운운’은 언론의 정도를 벗어나는 일이라며 서운한 감정을 비쳤다. 유력 후보들이 쓰는 법정비용(최고 509억원)은 득표율 결과에 따라 보전받을 수 있으므로 결국 국민세금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셈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정당 활동과 선거보조금 지원에 있어서 원외정당이 원내정당에 비해 심한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정당은 20세기에 들어와 대의민주주의가 발달되면서 크게 발전됐다. 특히 정치에 무관심한 세력들을 조직적으로 정치 의사형성에 이끌어 들이기 위해 공동적 권력 추구에 의한 결합체로서 정당이 헌법상의 제도로 승격됐던 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경우다. 제2공화국 헌법에서 정당 보호규정을 두었고, 제3공화국에서는 정당국가적 경향을 띠었으며, 제5공화국 헌법에서는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 의무 지원 조항 등 정당 지위가 상당히 강화된 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선거가 ‘민주정치의 꽃’으로 자리 잡은 시대에서 정당은 민주선거를 이끄는 필수불가결한 결사체이다. 하지만 한국 정당 모습은 본연의 활동과는 분명 거리가 있는 바, 그 이유는 ‘국민이익’을 위해 건전한 정치의사 형성이 목적임에도 지금 선거판에서 보듯 정당이 온갖 네거티브나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근원지 역할을 해오는 암행 때문이다. 이제는 헌법정신과 국민의사에 충실한 정당으로 태어나야 하고, 국민이익보다 계파이익만 쫓아온 적폐는 청산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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