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철 한국기술금융협회 IT 전문위원

 

기업들이 마케팅 전략을 수립할 때 필수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파레토 법칙’과 ‘롱테일 현상’이다. 전자는 ‘전체 20%에서 발생하는 현상이 나머지 80%의 발생결과의 원인이 된다’는 법칙이고, 후자는 ‘80%의 비핵심 다수가 20%의 소수 핵심보다 더 뛰어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원칙이다. 후자를 일컬어 이른바 ‘역 파레토 법칙’이라 할 수 있다.

이탈리아 사회학자 겸 경제학자인 파레토(Vilfredo Pareto; 1848~1923)는 동 시대 이탈리아 부의 분배를 조사하면서 “상위 20%가 이태리 전체 부의 80%를 가지고 있다”는 결과를 바탕으로 ‘파레토 법칙’을 주장했다. 파레토는 아울러 이 같은 부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파레토 최적’ 방안을 제시했는데, 본 방안에 따르면 결과물로서 얻는 혜택이 특정인에게 손해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으며, 이러한 개선–이를 ‘파레토 개선’이라 표현한다– 과정을 통해 전체가 동등한 이익 혹은 더 나은 이득을 취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흔히들 사과와 오렌지를 가진 두 사람 간의 효용사례를 들어 본 ‘파레토 최적’을 설명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사과 6개와 오렌지 6개를 가지고 있는 A, B 두 사람 중, A는 오렌지를 먹고 느끼는 만족감이 사과의 그것에 비하여 2배가 더 크며, B는 두 과일에 대한 만족감이 동일하다고 할 때, A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과를 모두 B가 보유하고 있는 오렌지와 교환하여 만족감을 2배로 높이고 싶을 것이다. 만약 B가 교환에 응한다면 B는 사과나 오렌지에 대한 만족감이 동일하므로 만족감 감소 없이 동일한 효용을 누릴 것이며, 반면 A의 경우는 교환을 통해 2배의 효용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교환 1). 즉 단순한 교환이라는 행위를 통해 누구의 손해도 없이, 한 사람은 보다 더 큰 효용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파레토 최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B가 A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면, 즉 A의 오렌지에 대한 만족감이 사과보다 2배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B는 오렌지 3개를 주고 사과 6개를 받으려는 교환을 시도할 것이다(교환 2).

왜냐하면 A의 경우 사과 6개로부터 얻는 만족감과 오렌지 3개로부터 얻는 만족감이 동일하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B는 자신의 전체적인 효용을 더 크게 하려는 목적으로 역제안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가지 경우 모두 만족감 측면에서 상호 손해가 없는 ‘파레토 개선’을 달성하지만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전자의 교환의 경우에는 B가 주저할 수 있으며, 후자의 경우에는 A가 주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교환을 통해 자신의 총 효용을 최대화하려는 상호간의 치열한 전략적 판단이 숨어있기 때문에 교환이라는 행위, 즉 ‘파레토 개선’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파레토 최적’은 구성원 누구에게도 손해를 끼치지 않고 그중 일부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지만, 최근의 우리나라 IT산업 발전 과정에 있어서는 위와 같은 ‘파레토 최적’ 목표를 향한 ‘파레토 개선’ 과정이 과연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위 사과와 오렌지를 보유한 A, B 두 사람 간 교환 사례를 국내 IT산업으로 반추해 보면, 산업을 주도하는 몇몇 거대기업들은 B와 같이 자본, 우수인력, 연구개발, 마케팅 영역 확보 등 여러 측면에서 아쉬울 것이 없으며, 기업 운영측면에서 이들 각자의 효용 차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반면 대다수의 중소 벤처기업이나 신생기업들의 경우에는 기술력, 발명특허 등을 자산으로 과감하게 사업을 시작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판매루트 확보, 자금 유동성 하락 등 예상치 못했던 여러 난관들에 쉽게 부딪칠 수 있게 된다. 기업경영 요소에 대한 효용의 차이가 거의 없는 대기업들은 신생·벤처기업들에 운영자금, 공장부지 제공 등 이들에게 가장 효용이 큰 요소를 제공하고, 이에 대한 교환대가로 벤처기업들이 어렵게 개발한 기술력 등과 합작 혹은 공동개발 등의 명목으로 교환을 시도해 최대한의 효용을 얻고자 할 것이다(교환 2의 사례).

어떠한 요소든 효용의 차이가 없는 대기업 입장에서는 이러한 교환이야말로 진정한 ‘파레토 개선’이 아니냐고 주장할 수 있지만, 벤처기업 입장에서 보면 단기적 관점에서는 이익이나 장기적으로는 파산, 흡수 등 회사의 운명이 걸린 위험한 교환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산업구조 다변화 차원에서, 전체 기업들의 양보와 타협을 통한 IT산업의 ‘파레토 최적’화 정책방안 수립을 고민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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