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국사 자하문의 청운교·백운교. 카메라를 들이대는 곳마다 역사 교과서의 한 장면이 나온다고 관광객들은 극찬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부처님의 나라 佛國… 신라 문화를 대표

[뉴스천지=강수경 기자] 봄기운 가득담긴 한국 속 세계문화유산 불국사와 석굴암을 만나기 위해 신라시대 자취가 물씬 풍기는 경주를 찾아갔다.

대중교통으로 경주에 오는 관광객이 도착해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곳은 고속버스터미널 앞에 늘어선 상가와 건물의 기와지붕이다. 특히 불국사 주변은 음식점과 상점, 유스호스텔, 심지어 주유소 지붕까지 모두 기와다. 건물 사이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의 연분홍빛과 기와의 짙은 먹색빛깔이 대비를 이루며 불국사 주변은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관광객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것은 이뿐 아니다. 불국사 입구에 조성된 대규모 벚꽃단지는 꽃이 만개해 눈이 부실 정도다. 관광객들은 만발한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위로 올라가면 이번엔 신라의 유산 ‘불국사’의 빼어난 자태에 다시 한 번 매료된다. 방문객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셔터를 눌러대기에 여념이 없다.

불교는 다른 종교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신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 당시 신라는 부처님의 나라를 뜻하는 ‘불국(佛國)’이라 칭하기도 했다. 불국사(佛國寺)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불국사의 본래 명칭은 화엄불국사로 세 개의 구역으로 나뉜 부처님 세계의 만남을 뜻한다. 각 구역은 석가모니 부처의 대웅전 영역, 아미타 부처(극락세계)의 극락전 영역, 비로자나 부처(연꽃에서 태어난 세계)의 비로전 영역으로 나뉜다.

 

 

▲ 토함산 중턱에서 내려다본 불국사 주변이다. 기와지붕과 벚꽃이 어우러져 봄철 한 때의 절경을 만들어 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이 세 개의 영역이 한 공간에서 조화를 이뤄내는 불국사의 모습이 신라인들이 바라던 부처님의 세계다. 이렇듯 화엄불교 철학을 담고 있는 불국사는 예술과 결합해 당시 문화예술을 대표하는 사찰로 손꼽힌다. 종교문화가 나라의 문화를 대표한 것이다.

불국사 대웅전에 들어서자 처음 맞은 광경은 다보탑을 보수하는 모습이었다. 2008년 12월 보수공사를 시작해 2009년 12월 다시 나타난 다보탑은 기존 부위와 새로 보수한 부분의 색이 달라 다시 덧칠하고 있었다.

보수공사 이후 옆에 있는 석가탑의 상태에 비해 월등이 나아진 모습에 관광객들은 도리어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 관광객은 “1200여 년 전 그대로의 모습인 석가탑에 비교해 볼 때 보수작업을 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색 덧칠 보수를 하고 있던 다보탑과 1200여 년 세월 묵묵히 지켜온 석가탑. ⓒ천지일보(뉴스천지)

 

 

우리나라 사적 및 명승 제1호인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景德王) 10년(751)에 개창해 혜공왕 10년에 완성됐다. 하지만 임진왜란으로 불타 대웅전 등 일부를 다시 세웠고, 1969~1973년 대대적으로 복원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동서 길이 약 90m 되는 석축과 청운교(靑雲橋)·백운교(白雲橋) 위에 자하문(紫霞門)·대웅전·무설전이 남북으로 놓였고, 석가탑(釋迦塔)·다보탑(多寶塔)이 서 있다.

불국사에서 옆으로 뻗은 산길을 따라 2.8km를 한 시간 남짓 올라가면 또 하나의 신라 예술의 절정 국보 제24호 ‘석굴암’이 있다. 토함산 중턱 화강암에 구멍을 내 석굴을 만들고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40구의 불상을 조각했다. 지금 남아있는 불상은 38구다. 신라불교예술의 극치라 평가받는 석굴암의 석불 앞에서 관광객들은 한참을 바라보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기도 했다.

김대성은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당시 석불사)을 지었다. 이 두 사원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 석굴암 석가여래상. 토함산 중턱의 백색 화강암에 구멍을 뚫어 만든 석굴암에는 석가여래불상 외에도 38구의 불상이 조각됐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