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헌 정도준의 ‘천지인’

소헌 정도준 시원한 필획으로 인정
경복궁 흥례문·유화문 현판 써내
역사적인 복원작업 다수 참여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1916년 일제의 만행으로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흥례문을 비롯한 주변 행각(行閣)이 모두 파괴됐다가 1990년 정부의 경복궁 복원사업으로 복원된 경복궁 흥례문(興禮門). 현재 흥례문에 걸린 편액(현판)은 2001년 복원 당시 제작된 것으로 굵고 시원한 필체의 멋이 드러난다. 이 편액은 서예전도사 소헌 정도준(紹軒 鄭道準, 1948~)의 작품으로 그는 흥례문·유화문 현판, 창덕궁 진선문, 숙장문 현판, 덕수궁 덕홍전 중수기, 청계천 벽, 숭례문 상량문 등 역사적인 복원작업에 참여한 바 있다.

우리 문화의 토대인 한글·한자 서예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서예전도사 소헌 정도준의 대표작부터 최근작까지 만나 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예술의전당은 오는 12일부터 6월 11일까지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정도준-필획과 구조 Stroke & Structure’를 개최한다.

이미지와 텍스트, 그리고 이들이 어우러진 70여점의 작품은 물론 ‘태초로부터 From Origin’ ‘천지인 Heaven, Earth, Man’ 시리즈와 기존의 한글·한자 각체혼융과 병존, 전각 등 20여년에 걸쳐 유럽등지의 해외초대전에서 선보인 걸작 ‘동굴’ ‘집’ ‘붓길’ 등을 볼 수 있다.

추상미술과 전통서예를 일맥으로 관통하는 정도준 작품의 필획과 구조의 근원적인 천착을 통해 우리 시대 서예의 새로운 진로를 함께 모색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목적이라고 예술의전당은 설명했다.

현재 우리는 인공지능과 로봇, 가상현실과 디지털 문자영상이 일상화된 기계시대 한가운데 살고 있다. 일상문자생활에서 붓글씨 ‘쓰기’를 키보드 ‘치기’가 대체하면서 인간이 기계가 돼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정도준은 처음 선보이는 ‘태초로부터’ 시리즈와 같은 작품을 통해 문자문명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뀐 이러한 시대와 사회 환경에서 ‘몸’에 의한 인간의 글씨쓰기인 서예가 어떻게 기계문자와 공존할 수 있는가를 근원적으로 묻고 있다. 더 나아가 인간에 의한 21세기형 새로운 서(書)를 정도준이 문제 삼고 있다.

전시는 ▲전적으로 이미지에 호소하는 ‘동굴 - 태초로부터’ ▲섹션과 이미지, 텍스트가 함께 노래하는 ‘집Ⅰ-문자의 우주宇宙’ ▲‘집Ⅱ-따로 또 같이 살기’ ▲글자의 정신성을 문제 삼는 ‘붓길, 역사의 길’ 등 총 4개의 테마로 구성된다.

첫 번째 섹션인 ‘동굴 - 태초로부터’에서는 서(書)와 미술의 경계를 허문 ‘태초로부터’ 시리즈와 그 전조가 된 ‘천지인’시리즈 등을 만나볼 수 있다. ‘태초로부터’는 서(書)를 중심으로 현대미술을 녹여낸 정도준의 예술성을 감상할 수 있다.

▲ 소헌 정도준의 ‘사랑’

이 작품은 선이 아닌 필획, 즉 평면의 라인이 아닌 입체의 스트록(stroke)에 근거한 구축적인 공간경영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엿볼 수 있다. 정도준은 전통과 현대, 동과 서가 여하히 하나로 만날 것인가의 문제를 이 작품을 통해 풀어냈다.

두 번째 섹션인 ‘집Ⅰ-문자의 우주宇宙’에서는 글자라는 틀 속에서 살아가기로 합의된 서(書)의 전통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한자 한글의 전(篆)·예(隸)·해(楷)·행(行)·초(草)부터 고체와 궁체가 즐비하다. 또 한글과 한자의 병존과 각체의 혼융이 자유자재로 표현됐다.

세 번째 섹션인 ‘집 Ⅱ-따로 또 같이 살기’에서는 ‘해야 고운해야 Sun, Dear My Suns’ ‘길 The Road’ 등 혼용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는 다른 서예 작품과는 차별화된 정도준만의 색이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정도준의 공간경영, 즉 장법(章法)을 보면 한글 한자 언어의 병존과 서체의 혼융이 한 축을 이룬다. 심지어 서(書)와 전각의 병존은 물론 바위 그림과 조각보가 한자 한글과 같은 문자와 나란히 자리하면서 유기적으로 어울린다.

네 번째 섹션인 ‘붓길, 역사의 길’에서는 ‘숭례문 복구 상량문’ ‘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배가 남아있나이다’ 등 역사적인 소재로 작업한 작품들이 기대를 모은다.

서(書)의 절반이 내용, 즉 텍스트다. 이번 전시의 역사섹션의 현판이나 어록은 그 자체만으로도 정도준이 편집해 낸 붓길의 역사이자 우리 역사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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