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4일 “국정농단 문제가 있었던 친박들을 용서하자”고 말했다. 홍 후보는 이날 경북 안동 유세에서 “이제 친박들 당원권 정지하고 그런 것을 다 용서하자. 모두 용서하고 하나가 돼서 대선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홍 후보는 탈당한 이정현 전 대표와 정갑윤 의원을 비롯해 당원권이 정지된 서청원·최경환·윤상현 의원 등 친박계 의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거명했다.

물론 홍준표 후보의 이런 행보는 예상할 수 있었던 대목이긴 하다. 여론을 ‘좌우’로 나누고 자신을 ‘우파 세력’의 대표로 자임하는 상황이라면 우파 내부의 징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떻게든 ‘좌파’와 싸워서 이겨야 하고, 설사 이기진 못하더라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할 상황이라면 내부의 단합보다 더 좋은 무기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한 표가 아쉬운 상황에서 어떤 가치나 신념 또는 원칙 같은 말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울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보수의 변화나 개혁 같은 그간의 말도 하나의 ‘레토릭’에 불과했을 것이다.

사실 이전의 홍준표 후보는 달랐다. 홍 후보가 대선 후보로 나설 즈음인 지난 3월 스스로 국정농단에 앞장선 친박들을 향해 ‘양박(양아치 친박)’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해 ‘춘향이’인 줄 알았는데 ‘향단이’였다고 비판하며 최순실 사태의 원인을 ‘친박 패권주의’라고 규정할 정도였다. 그래서 홍준표 후보가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되면 이전과는 많이 다를 줄 알았던 것이다. ‘양박’들을 청산하고 바른정당과 ‘보수의 혁신’ 경쟁을 하며 더 건강한 보수로 거듭날 줄 믿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선을 불과 닷새 앞둔 시점에서 터져 나온 홍 후보의 친박 포용 발언은 유감을 넘어 적잖은 실망감을 느끼게 된다. 이전의 말과 달라졌다는 실망감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더 건강한 보수의 신념도 포기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선 직전에 단순히 표를 의식한 것이라면 그에게 기대할 미래의 비전은 또 무엇이 있겠는가.

혹자는 바른정당에서 탈당한 일부 의원들의 복당을 당내 친박계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하자 이들을 회유하기 위한 ‘정치적 거래’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친박계 포용과 바른정당 탈당파의 복당을 동시에 거래하자는 얘기로 들린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치를 극도로 희화화 시키는 후진적인 모습에 다름 아니다. 정치적 소신과 결단마저 표 앞에서는 무분별하게 거래되는 현실이라면 우리 정치에 무슨 가치와 미래가 있겠는가. 이제 며칠 남지 않았지만 우리 정치를 폄훼하거나 희화화 시키는 언행을 자제하길 바란다. 홍 후보에게 우리의 미래를 거는 지지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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