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19대 대선이 불과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끝에 갑자기 치러지는 선거이긴 하지만 이번 대선이 갖는 정치적 비중은 실로 엄청나다. 역대 대선과는 다른 그 무엇이 우리 시대에 주어져 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낡고 병든 구체제(앙시앙 레짐)를 확실하게 끝내는 ‘정치적 전환점’이 돼야 할 선거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한겨울 찬바람 부는 광화문광장에서 흔들림 없이 촛불을 든 ‘위대한 국민’에게 화답하는 최소한의 정치적 책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종착역이 눈앞에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혁명과 반혁명 

지난해 겨울의 광화문광장은 ‘혁명의 공간’이었다. 총과 무기가 아니었다. 시민들은 서로를 의지한 채 촛불을 들었으며 함께 평화와 민주주의의 축제를 벌였다. 말 그대로 명예로운 ‘시민혁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134일간 연인원 1600만명의 동참은 우리 헌정사 초유일 뿐 아니라 인류역사의 자랑으로 기록돼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지금 찬란한 봄을 맞고 있는 것이다.
19대 대선은 광화문광장의 연장선에 있다.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선거환경이 만들어진 것도 그런 이유라 하겠다. 여권이 통째로 붕괴돼 버린 정치지형, 그래서 일찌감치 정권교체가 사실상 이뤄진 상태에서 구체적으로는 ‘어떤 정권교체인가’를 놓고 경쟁하는 선거구도가 만들어진 것도 같은 배경이라 하겠다. 따라서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적폐였던 ‘이념 대결’과 ‘지역주의 대결’이 상당부분 완화되면서 마치 ‘괴물’ 같았던 ‘진영논리’가 깨지는 사상 초유의 대선정국이 전개돼 왔던 것이다. 
그러나 혁명 뒤의 반혁명이 더 무섭다고 했던가. 광화문의 촛불과 민주주의 함성을 메치는 ‘반혁명’의 조짐들이 최근 곳곳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다시 지역주의를 선동하고 사사건건 국민을 좌파와 우파로 편 가르기 하는 ‘이념적 대결정치’가 그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특정 후보들을 ‘북한 인공기’로 상징화시킨 악질적인 선거 홍보물까지 등장하고 있다. 말로는 ‘국민통합’ 운운하지만 실상은 국민을 좌와 우,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라쳐서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진영논리’를 부활시키고 있는 셈이다. 더 불행한 것은 이런 저급한 주장이 다소나마 통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4.19 혁명’ 뒤 민주주의가 짓밟히며 군사독재정부가 들어섰던 아픈 역사를 배웠다. 1987년 ‘6월항쟁’도 마찬가지였다. 거리를 메운 시민들의 함성이 끝나자마자 노태우 정부가 들어섰다. 혁명의 뒤끝은 이처럼 늘 아프기만 했다. 그렇다면 이번 19대 대선행 열차는 우리에게 어떤 역사를 안길 것인가. 쭉 뻗은 민주주의의 대지로 힘껏 내달릴 것인가. 그리고 그 대지는 과연 구체제가 끝나는 ‘새로운 영토’가 될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핸들을 꺾어 반혁명과 구체제의 습지를 향해 거꾸로 내달릴 것인가. 이래저래 대선 결과가 참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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