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준 민속 칼럼니스트 

 

‘천인천자문’은 천 명이 한 글자씩 써서 만든 천자문이다. 이 책은 조선후기 양반 자식의 돌상 위에 올려졌다. 그렇게 하면 천 명의 지혜가 내 아들 손자에게 고스란히 옮겨질 것으로 믿었다.

천인천자문은 한 글자씩 쓰고, 그 글자 옆에는 자기 이름을 쓰고 도장까지 찍어 놓았다. 아래에는 한글로 뜻과 음도 달았다.

‘천자문’은 중국 양나라의 주흥사(周興嗣)가 죄를 용서 받는 대가로 황제의 명을 받아 하룻밤 사이에 지었다고 한다. 천자문을 짓고 머리가 하얗게 셌다고 하여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한다. 네 글자씩 묶어 250개의 문장으로 엮었는데 1000자가 각각 다른 글자로 돼 있다. 서예의 성인(書聖)으로 존경받는 왕희지(王羲之)가 쓴 글자를 모아 만들었다.

천자문은 ‘천지현황(天地玄黃)’으로 시작하여 ‘언재호야(焉哉乎也)’로 끝난다. 자연현상이나 인륜, 도덕에 관한 내용이 짜임새 있게 구성됐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시대 이후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천자문은 지금으로 말하면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연대는 백제 때 왕인(王仁)이 ‘논어(論語)’ 10권과 함께 이 책 1권을 일본에 전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훨씬 이전에 들어온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는 선조 때 명필 석봉(石峯) 한호(韓濩)가 쓴 ‘한석봉천자문’이 제일 유명했다.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아이들이 “하늘 천(天) 따 지(地) 검을 현(玄) 누를 황(黃)”이라 읽고 나서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하늘이 파란데 왜 검으냐”고 물어도 대답 없이 야단만 쳤다.

춘향전에는 방자가 이 도령 앞에서 “높고 높은 하늘 천, 깊고 깊은 따 지, 홰홰친친 감을 현, 불탔다 누를 황”이라 읽었다.

천자문은 중국의 역사와 문물제도를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조선후기 정약용은 “천자문 한 권을 다 읽어도 무슨 뜻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고 혹평했다. 그래서 “이해하기 어려운 천자문을 어린이들에게 가르쳐서는 안 된다”며 쉽게 배울 수 있는 ‘아학편(兒學編)’을 새로 엮었다. 

어쨌든 천인천자문은 보통 정성으로는 만들 수 없는 힘든 일이었다. 당시 글을 아는 사람은 양반이었고 천 명을 직접 만나서 한 글자 한 글자씩 받았을 것이다. 기간도 1년은 족히 걸렸으리라 여겨진다.

가문의 대를 이을 귀한 아들이나 손자를 얻었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천인천자문을 부지런히 익힌 후 과거에 급제하기를 기대하면서 갖은 정성을 들였으리라 생각된다.

천인천자문을 만들었던 조선 양반이 오늘날 강남 학부모의 스승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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