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3년 전 서울 양천구에서 있었던 일이다. 다가구 주택이었는데 6가구 27명이 살고 있었다. 어린이, 청소년만 9명이었다. 이들이 엄동설한에 쫓겨난 이유는 무엇일까. 토지주와 건물주의 분쟁에 세입자가 새우등 터진 경우다.  

이들이 세 살던 건물주는 사업도 안 되고 협상을 잘 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 토지사용료를 밀리게 됐다. 토지주는 다가구주택을 4개 가지고 있었는데 세 군데는 건물주에게 토지를 넘겼다. 오랜 밀당 끝에 협상이 마무리됐다. 나머지 한 곳만 타결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건물주는 세를 내 놓았고 세입자들은 계약을 했다. 부동산 사무소는 세입자들에게 토지주와 건물주가 분쟁 중에 있긴 한데 협상 중이니까 조만간 타결될 것이라고 안심을 시켰다. 다른 건물도 협상이 타결됐다는 점도 강조했다. 세입자들은 약간 찜찜하게 생각하면서도 계약을 했다. 왜 그랬을까? 별 문제 있겠냐는 막연한 생각도 있었고 부동산 사무소의 말을 믿기로 하자는 마음도 있었다. 세입자들이 계약을 한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다른 곳보다 쌌기 때문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싼 데는 뭔가 이유가 있다. 동네에서 과일을 살 때도 싼 건 대개 뭔가 문제가 있다. 적은 돈으로 집을 정해진 기간 안에 구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몰린 세입자는 판단을 그르치기 쉽다. 또 다른 문제는 시세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점도 있다. 아파트는 시세를 알 수 있지만 빌라나 다가구 단독주택은 집값 알기가 쉽지 않다. 부동산 사무소에서 이만한 데가 없다고 하면 자신도 모르게 계약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문제의 주택으로 돌아가자. 토지주는 건물주가 지료를 상당 기간 동안 안 낸다는 이유로 법원에 건물 철거명령을 신청했는데 법원은 토지주의 손을 들어줬다. 승소한 토지주는 다시 세입자 퇴거명령을 법원에 신청해서 퇴거명령을 받아냈다. 결국 토지주는 법의 힘을 빌어 6가구 세입자 가족을 강제 퇴거시켜 버렸다. 세입자 가족은 1층 주차장에 텐트를 치고 저항을 했지만 법은 냉정했다. 5가구는 보증금이 1억 3천만원이고 한 가구는 보증금이 3천만원이었다. 세입자들은 투지주에게 자신들에게 토지를 팔라고 요청했지만 매우 비싸게 불러서 살 수 없었다. “대한민국에 주거권이 있는가?” 하고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분들 만난 사연은 이렇다. 한 매체에 양천구에 사는 6가구가 강제 퇴거 당할 상황이라는 뉴스를 보고 기자에게 연락을 해서 세입자들과 연락하고 싶다면서 연락번호를 남겼더니 세입자 대표격인 분한테서 연락이 왔다. 만나서 자초지종을 듣고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다.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건물주가 경기도 하남시에서 사업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으리으리한 회사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민변 소속 자문변호사가 접촉을 시도해 보았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강제 퇴거 전후해서 세입자를 상대하는 사람은 토지주가 아니고 토지주와 계약금을 건넨 사이라고 하면서 법률 대리를 자처하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보기에는 부동산 브로커 같았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말은 널리 알려져 있다. 건물주 위에 토지주 있다는 말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말이지만 참으로 심각한 문제다. 세입자의 6억이 넘는 재산을 꿀꺽하는 데도 대한민국의 법과 경찰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정의의 보루라고 일컬어지는 법원은 6억이 넘는 국민의 재산을 강탈하도록 도장 찍는 기계 노릇을 하고 있더라는 점이다. 

브로커의 농간이 끼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모두 합법의 형태를 띠고 있어서 어떤 방법을 찾기 힘들어 무력감에 휩싸였다는 걸 고백한다. 세입자 가족들, 특히 9명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입었을 마음의 상처는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국가는 세입자가 돈을 내야 하는 전세보증을 이용하라고 강요하지 말고 임대차등록제를 도입하고 임대차 거래를 꼼꼼히 관리하는 방식으로 보증금 전액 보장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내어 놓아야 한다. 

토지주와 분쟁 중에 있는 건물은 전세를 내어 놓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2~3월치만 보증금을 맡기는 서양식 월세만 허용하는 입법을 해야 한다. 국가는 국민이 안정된 보금자리에서 살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야 한다. 양천구 사건처럼 억울한 일을 당한 국민이 더 이상 없도록 국가는 책임을 다 해야 한다. 국회가 됐든 정부가 됐든 보증금 보호를 위한 법적, 행정적 대안을 마련할 책임이 있다. 

이른바 장미대선을 맞아 장밋빛 공약이 넘치고 있다. 사회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공약 꼭 필요하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법적인 대책 마련에 실패해서 국민 생활이 흔들리고 주거의 기반 자체가 파괴되는 사태를 막는 것이다. 전세, 반전세 보증금 보장 대책이 절실하다. 토지주와 건물주의 분쟁 때문에 오늘도 어제도 보증금 떼이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주민등록과 확정일자 받아도 다음 날 효력이 발생되기 때문에 보증금 잃는 국민이 수두룩하다.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보증금 대책이 안 보인다. 누가 당선되든 보증금 대책을 확실히 제시해서 보증금 때문에 피눈물 흘리는 국민이 더 이상 생기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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