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고목나무는 느티나무가 가장 많다. 옛날에 마을 재판도 하고, 농사짓다 힘든 이야기를 나누며 휴식을 취하던 공간이 느티나무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돈화문 세 그루 회화나무
삼정승이 정사 논한 것 의미

옛 선조들, 느티나무 아래
오순도순 앉아 피로 풀기도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안에 왜 세 그루의 회화나무를 심었을까요?”

경북대학교 명예교수이자 농학박사인 박상진 교수의 질문에 관람객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교수가 잠시 뜸을 들이자, 다들 교수를 빤히 쳐다보며 답을 알려달라고 신호를 보냈다.

“중국 주나라 때 조정에서 회화나무 세 그루를 심어 삼공(三公, 삼정승)의 자리로 삼고 정사를 논했다는 예에 따른 것입니다. 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서 조선에서도 회화나무 세 그루를 심었습니다.”

박 교수의 명쾌한 설명에 관람객들은 마치 시험문제의 답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연실 끄덕였다.

▲ 금천교를 건너니 가지가 길게 늘어진 능수버들이 모습을 보였다. 버들 고목은 흔히 줄기가 잘 썩어 버려 큰 구멍이 생기는데, 도깨비를 비롯한 여러 이야기가 서려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금천교에 가지 길게 늘어진 ‘능수버들’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덕궁 돈화문 앞. ‘창덕궁 동궐도 나무답사’에 참여한 30여명의 관람객들은 하나라도 더 깨닫기 위해 박 교수 옆에 착 달라붙어 설명을 들었다. 먼저 박 교수는 동궐도(東闕圖)의 뜻부터 설명했다.

“본궁인 경복궁 동쪽에 있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게 바로 동궐도입니다. 200년 전 그린 동궐도 속의 나무 중 40~50여 그루가 살아 있는 것으로 짐작됩니다. 현재 찾은 건 30그루죠. 그 중 특별한 나무를 오늘 소개하려 합니다.”

그는 금천교를 건넌 후 가지가 길게 늘어진 능수버들을 소개했다. 박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능수버들은 습기가 많은 곳에 잘 자라고 비교적 고루 뻗은 성절이 있어 하천 둑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심는 경우도 많다. 버들 고목은 흔히 줄기가 잘 썩어 버려 큰 구멍이 생기는데, 도깨비를 비롯한 여러 이야기가 서려 있다.

버드나무는 이별나무이기도 했다.

“버드나무는 나루터에 많이 심지요? 버들가지는 머리카락처럼 길게 늘어지는데, 집에 있는 여인이 ‘내 마음이 흔들릴지 모르니 빨리 돌아오세요’라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한 관람객은 여인의 마음이 담긴 버드나무 이야기가 귀에 쏙 들어왔는지 “정말 신기하다”라며 환호했다.

▲ 정전인 인정전 오얏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왜 정전 안에는 나무가 없을까

“그럼 왜 정전 안에는 나무를 안 심었을까요?”

인정문을 지나 정전인 ‘인정전’을 바라보던 박 교수가 잠시 멈칫하더니 관람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긋이 미소 짓던 박 교수. 다시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첫째는 자객이 숨을 수 있어섭니다. 두 번째는 입구(口)에 나무 목(木)을 합치면 곤할 곤(困)자가 됩니다. 또 문 두 개(문 문, 門)에 나무목이 있으면 한가할 한(閑)이 되는데, 궁궐에서 곤하고 한가하면 안 되겠죠? 마지막으로 나무가 바람에 쓰러지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정전에 새겨진 오얏꽃을 손으로 가리키며 이에 담긴 의미도 말했다. 박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오얏나무는 자두나무의 옛 이름이며, 조선 임금의 성씨인 이(李)씨를 상징한다. 다만 조선왕조 때에는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고, 조선 말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오얏꽃을 황실 문장으로 사용했다. 오늘날 창덕궁에서 보는 오얏꽃 문양은 순종이 즉위한 1907년 이후 넣은 것으로 보인다.

▲ 후원 입구에 있는 성정각 자시문 밖과 건너편 삼삼와 앞에는 매화나무 고목이 한 그루씩 자라고 있다. 동궐도에 보면 자시문 밖의 같은 위치에 나무 한 그루가 보이나 지금의 매화나무를 그린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후원의 느티나무, 뽕나무에 담긴 의미

전각을 조금 더 돌아본 후, 창덕궁 후원으로 향했다. 길게 이어진 후원으로 가는 길 위로 우거진 푸른 잎이 아름다웠다. 그 사이로 조금씩 빛이 들어오는데 마치 건너편에 다른 세계가 있는 듯 한 느낌을 줬다. 관람객들도 주변을 두리번두리번하며 자연을 만끽했다.

어느덧 후원에 도착했다. 그리고 ‘영화당’ 앞에 큰 느티나무 한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옛날 그림이나 동궐도에는 느티나무가 나옵니다. 우리나라 고목나무는 느티나무가 가장 많았죠. 평평한 곳에서 자라면 가지를 옆으로 넉넉히 펼칩니다. 이 나무처럼 말이죠. 옛날에 마을 재판도 하고, 농사짓다 힘든 이야기를 나누며 휴식을 취하던 공간이 바로 느티나무입니다.”

설명을 가만히 듣고 있으니, 나무에 기대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는 옛사람들의 모습이 절로 눈에 그려졌다. 어쩌면 느티나무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건 아닐까.

▲ 750년된 터줏대감인 향나무. ⓒ천지일보(뉴스천지)

후원을 조금 더 걸으니 뽕나무도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친잠례’라고 해서 왕비가 직접 뽕잎을 따서 누에를 치는 일을 했는데, 이 나무가 바로 뽕나무인 거다. 이후 후원의 밤나무, 은행나무를 둘러본 뒤 마지막 도착지인 궐내각사 건물인 규장각 뒤 향나무에 도착했다.

“향나무 모양이 울퉁불퉁하죠? 향을 피우기 위해 나무를 계속 얇게 깎다 보니 지금과 같은 모양이 된 듯 보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 향나무는 750년 된 궁궐의 터줏대감”이라고 말하며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 마지막까지 관람객이 집중할 수 있게 했다.

나무답사를 통해 관람객도 배우는 게 큰 듯 했다. 한 관람객은 “그냥 창덕궁을 걸어 다닐 땐 나무에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나무마다 역사가 담긴 사실을 알고 놀랐다”며 “역사체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는 날”이라며 참여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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