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포커스] ‘살아있는 패션계의 전설’ 하용수, 그의 열정과 도전엔 끝이 없다
[피플&포커스] ‘살아있는 패션계의 전설’ 하용수, 그의 열정과 도전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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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디자이너 하용수씨가 지난달 25일 서울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천지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박혜옥 기자] “나는 축복이다. 최소한 100인분의 인생을 산 것 같으니까.”

살아있는 패션계의 전설로 불리는 하용수 디자이너의 자서전 ‘네 멋대로 해라’의 프롤로그 첫 줄에 적힌 글귀다.

‘하용수’를 수식하는 단어는 많다. 배우, 디렉터, 패션디자이너, 사업가, 작곡가, 스타 메이커 등. 디자이너로서의 활동은 물론 가장 최근에는 배우 이일화·양동근과 함께 영화 ‘천화’에 주연배우로 출연해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JIFF)에 공식 초청되기도 했다. 열정과 도전에 끝이 없음을 몸소 보여주는 디자이너 하용수. 그를 지난달 25일 서울 이태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남다른 패션과 스타일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용수가 말한 ‘나는 축복이다’는 무슨 의미일까. 자신을 축복받은 사람으로 표현한 걸까. 이에 대해 하용수는 “축복이라는 것은 역설적인 얘기기도 하다. 내가 나를 위로하는 소위 긍정적인 마인드다. 자타가 공인하는 사람으로 우뚝 섰을 때가 있으니깐. 너는 괜찮아. 스스로 주문을 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와 문화 행사장에서 만나 몇 번의 대화를 해 본 어느 지인은 그를 두고 ‘어린 왕자’로 표현했다. 실제 만나보니 100% 이상 공감됐다.

그의 자서전에는 이렇게 적혔다. “남들 보기엔 카리스마가 대단한 나로 비추어졌겠지만, 난 소심하고 여리고 그러나 항상 꿈은 많이 꾸는 피터팬이었다”라고.

하용수는 19살 때 일명 ‘길거리 캐스팅’으로 ‘코카콜라’ 모델을 하면서 연예계에 발을 디뎠다. 이듬해인 20살 때는 모델인 친구를 따라 간 스튜디오에서 카메라 테스트를 받은 뒤 ‘박카스’ 1호 모델로 활동하게 됐고, 이어 ‘오란씨’ 음료 모델로 활동했다.

이후 신성일 주연의 영화 ‘별들의 고향’에서 여주인공의 첫사랑 역으로 출연해 소위 일약스타가 됐다.

“(개봉 후) 나에게 들어온 시나리오만 15개였을 정도이니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 내 인기가 실감이 나지 않던 20대였다”고 그는 회상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그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27세 때 마약을 하지는 않았지만 고위층이 연루된 비리사건으로 인해 연예계에게 숙청을 당하듯 잠정적인 은퇴를 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한 금기의 시간은 길었다.

▲ 패션디자이너 하용수씨가 지난달 25일 서울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천지일보와 인터뷰를 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어릴 때부터 또래 친구들보다 패션에서 남달라 늘 주목을 받았던 그다. 그의 인생을 획기적으로 바뀐 사건이 있으니, 바로 패션디자이너 진태옥과의 만남이었다. 진씨의 제안으로 디렉터를 맡게 되면서 그는 패션계로 본격적으로 발을 디뎠다.

‘그때부터 앙드레 김 선생님 패션쇼를 제외하고는 국내 99%의 패션쇼를 직접 디렉팅하기 시작했다(하용수 자서전 中).’

그 당시 내로라하는 가수, 배우의 의상에 이어 영화 속 의상 담당까지 패션디자이너로서 승승장구했다.

모든 분야에서 최고였던 그는 한 순간 나락으로 떨어졌다. 사기를 당해 모든 것을 잃게 된 것.

이로 인해 그는 짧지 않은 시간 괴로워했다. 자서전에선 ‘아직도 아프다’고 고백했다. 그 시기에 어머님의 죽음까지 겹치자 그는 다시 일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사람이란 어떻게든 살아간다는 말이 맞는 것인지, 그 휘몰아치던 폭풍 속에서 난 그 폭풍의 눈이 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라고 할 만큼 힘든 시간이었다. 7년 동안 번 돈은 고스란히 채무자의 손으로 들어갔고, 현재는 다 갚은 상황이다.

힘든 시간을 겪고 그는 아픔만큼 강해졌다.

그는 “자신한테 승리해야 인생에서 승리하는 것 같다. 어느 누구 때문이라고 핑계될 수 없다. 스스로 자신을 컨트롤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글 쓰는 게 도움이 됐다고 한다. 글을 쓰며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와 대화하며 반성하는 것이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그는 SNS 등을 통해 가족, 지인과 함께한 사진과 글을 공유하며 소통하고 있다. 특히 그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손자 태현이에 대한 사랑이 묻어난다. 손자 태현이는 어떤 존재냐는 질문에 그는 “에너지·희망이고, 제가 살아가는 이유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이”라고 말했다. 손자 얘기에 그는 어느 때보다 행복한 미소를 보였다.

그는 멋진 계획을 준비 중이다. 아티스트로서 한류 차원에서 중국 측과 협업을 통해 하이 브랜드, 세컨드 브랜드 그리고 한국디자이너들과 의기투합한 멀티 브랜드를 계획하고 추진하고 있다.

쉼 없이 달리는 그를 보며 자서전 속 한 문구가 떠올랐다.

‘멈추면 안 되는, 내 삶의 연장선들은 또다시 내게 더욱 커다란 꿈을 꾸라고 종용한다. 마치 명령과도 같이, 젊은 날의 꿈이 아닌 성숙한 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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