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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고개 편] ②눈물 없이 넘지 못한 ‘미아리고개’ 아시나요
장수경 기자  |  jsk21@newscj.com
2017.05.04 08: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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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북한산을 진산으로 하고 북악·남산·인왕산·낙산 등 크고 작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또 산줄기를 뻗어 내리는 지형상 많은 고개도 있었다. 고개는 옛날부터 백성들의 교통로였다. 또 고개마다 다양한 설화도 전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 조상들의 애환과 삶, 숨결이 전해오고 있는 고개 속에 담긴 이야기를 알아봤다.

 

   
▲ 미아리고개 옛 모습과 현재의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북쪽→서울 들어오는 문턱 되는 고개
미아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위치
6.25전쟁, 北 퇴각 때 애국지사 끌려가
‘한 많은 미아리고개’로 불리기 시작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미아리 눈물고개/ 울고 넘던 이별 고개/
화약연기 앞을 가려/눈 못 뜨 고 헤매일 때/
당신은 철사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 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던 그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고개.’

한국전쟁 종전 후에 발표된 노래인 ‘단장의 미아리고개’. 단장(斷腸)은 창자를 끓어내는 고통을 말한다. 이 노래의 작사인 반야월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가족을 집에 남기고 홀로 피난길에 올랐다. 이후 아내를 만났는데, 딸 수라는 없었다. 아이가 전쟁 중 숨진 것. 전쟁 숨진 아이를 고갯길에 손으로 흙을 파고 묻을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아내에게 전해 듣고, 창자가 터지는 듯 아픈 마음을 노래 가사로 지었다고 한다. 이처럼 미아리고개는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었다.

   
▲ 미아리 확장도로 개통식 (출처: 서울아카이브사진)

◆옛 이름은 되너미고개’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서 정릉천을 지나 의정부로 이어지는 고개인 미아리고개. 이곳은 무악재와 함께 서울에서 북쪽으로 가는 길목의 첫 번째 큰 고개요, 북쪽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문턱이 되는 고개다. 미아리고개라고 불린 건 미아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였기 때문이다.

또 일제 강점기에 이 일대에 한국인 공동묘지가 조성됐는데, 이 고개를 넘어 미아리 공동묘지에 묻히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므로 이때부터 미아리고개라 칭하게 됐다고 한다. 원래 이 고개는 되너미고개라고 불렀고, 한자로 적유현(狄逾峴) 또는 호유현(胡踰峴)이라 했다. 18세기 중엽 겸재 정선이 그린 ‘도성대지도’와 김정호의 ‘수선전도’에는 적유현이라고 표기돼 있다.

   
▲ 미아리고개 주변 옛 풍경 (출처: 서울아카이브사진)

같은 시기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사산금표도’ 등에는 호유현으로 표시돼 있다. 이는 우리말의 되너미고개를 한자어로 표기한 것으로 보면 된다. 또 되너미고개의 명칭은 병자호란 때 되놈(胡人)이 이 고개를 넘었다 하여 유래됐다고 한다.

6.25전쟁 때는 동족인 북한군이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기습 남침하고 다시 중공군이 참전해 넘나들었으니, 참으로 기이한 운명이다. 

북한에게 점령당한 수도 서울을 한국군과 유엔군이 같은 해 9월 28일 탈환할 때, 북한군이 이 고개를 넘어 퇴각했는데, 이때 많은 애국지사와 저명인사가 북으로 함께 끌려갔다. 이후 돌아오지 못하자 ‘한 많은 미아리고개’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그 한과 슬픔을 담은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여전히 우리네 가슴을 울리는 듯하다.

   
▲ 단장의 미아리고개 노래비 ⓒ천지일보(뉴스천지)

◆고개 정상 유래비·노래비 세워져

지금은 미아리고개가 험준하진 않지만, 예전에는 우마차가 다니지 못할 정도로 매우 경사진 고개였다고 한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차례 깎여져 많이 낮춰진 데다 1960년대 중반 도로 확장공사로 지금의 모습을 이뤘다. 현재 미아리고개 정상부근에는 ‘미아리고개 사적비’와 ‘단장의 미아리고개 노래비’ ‘미아리고개 유래비’ 등이 세워져 있다.

이 고개를 지나 고층아파트로 향하는 사람에게 미아리고개에 담긴 슬픈 사연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하지만 미아리고개 유래비의 경우 먼지가 얼룩덜룩 묻어 있어 글씨를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도 눈을 찌푸리며 글자를 읽어가야 해 아쉬움이 컸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한 많은 고개, 병자호란 때 되놈이 넘나들던 고개, 6.25 전쟁 때 북한군과 중공군이 넘나들던 고개. 아픈 역사적 장소지만, 이곳은 분명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장소임은 틀림없었다.

   
▲ 단장의 미아리고개 유래비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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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
장이유
2017-05-08 15:16:52
찬성:0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삭제하기 신고하기
미아리고개에 이런 사연이 있었구나 마
미아리고개에 이런 사연이 있었구나 마음 아픈 이야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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