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고조가 죽고 혜제가 제위에 오르자 마침내 여 태후가 천하의 대권을 한손에 휘어잡았다. 태후는 여씨 일족을 왕으로 내세우려는 야심을 품고 있어서 중신들 가운데 간언을 많이 하는 자들을 멀리 했다.

육가는 여 태후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고 단정하자 병을 핑계로 조정에서 물러났다. 그는 호치에 있는 자기 땅으로 옮겨 가기로 했다.

육가에게는 아들 다섯 명이 있었다.

그는 예전에 남월에 사자로 갔을 때 얻은 재물 천금을 바꿔서 이것을 다섯 아들에게 각각 2백금씩 나누어 주고 독립을 시켰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언제나 4마리 말이 이끄는 마차를 타고 열 명이나 되는 악사를 거느리고 허리에는 백금쯤 되는 보금을 차고 있었다. 육가는 아들들과 헤어질 때 말했다.

“미리 약속을 해 두자. 내가 너희들 집에 따로 따로 들를 때에는 술 한 잔씩을 대접해다오. 그리고 말 시중도 들어 주렴. 열흘쯤 즐기고 나서는 다음 집으로 옮겨 가겠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죽겠지. 내가 숨을 거둔 바로 그 집에다 이 보검과 마차와 종들을 남기겠다. 딴 집에 갈 때도 있을 것이다. 너희에게 가는 것은 고작 일 년에 두세 번일 게야. 너무 자주 만나면 서로가 그렇게 반갑지도 않을 것이고 너무 오래 묵어서 너희들에게 피해를 줘도 안 되지 않겠느냐?”

육가는 그렇게 말한 뒤 여유로운 생활을 즐겼다.

한편 여 태후가 여씨 일족을 제왕으로 내세운 뒤 더 나아가 나라의 권력을 독차지하고 황위까지 넘보게 됐다.

진평은 이 일을 걱정했으나 그때 그에게는 여씨 일족과 싸울 만한 힘이 없었다. 그뿐 아니라 섣불리 움직였다간 언제 화를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는 줄곧 방에만 틀어박혀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육가가 진평을 찾아가서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진평은 깊은 생각에 빠져 있어 육가가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육가가 말을 걸었다.

“승상께서는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 하고 계시오.”

그때서야 놀란 진평이 손님을 맞았다.

“육가 선생께서 오셨군요. 선생은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시겠습니까?”

“승상은 봉지 3만호를 가진 신분이오. 재상으로서 더 이상의 부귀는 없을 줄 압니다. 그런데도 걱정거리가 있으시다면 역시 여씨 일족의 횡포와 어린 황제를 염려하시는 일밖에 더 있겠습니까?”

“잘 보셨습니다.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선비란 원래 태평시대에는 재상에게 기대하고 위급한 시대에는 장군에게 기대하는 법입니다. 재상과 장군이 힘을 합친다면 선비는 모두 따라가기 마련입니다. 선비의 뒷받침이 있는 한 나라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나라의 권력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즉 국가의 운명은 두 분의 손 안에 들어 있다는 뜻이지요. 나는 이런 문제들을 태위 강후에게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강후는 내 말을 들어 주지 않았소. 그래서 승상에게 말씀드리오니 무엇보다도 먼저 태위와 친분을 두텁게 하여 협력을 강구하셔야겠습니다.”

육가는 진평에게 그렇게 말하고 여씨 일족을 토벌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자세히 일러 주었다.

진평은 육가가 말한 대로 즉시 강후를 초청하고 5백금을 들여서 주연을 베풀었다. 태위도 그 답례로 잔치를 베풀어 보답함으로써 그 기회에 그들의 협력 관계를 굳혔다.

그 결과 여씨 일족의 음모는 좌절됐다.

진평은 육가에게 사례로서 노비 백 명, 거마 50승, 돈 5백금을 주었다. 육가는 그것으로 조정의 고관들과 사귀면서 더욱 이름을 떨쳤다.

여씨 일족을 없애고 문제를 옹립할 무렵에 육가가 담당한 역할은 몹시 대단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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