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꼭지

정진규(1939~  )

엄마야, 부르고 나니 다른 말은 다 잊었다 소리는 물론 글씨도 쓸 수가 없다 엄마야, 가장 둥근 절대에, 엄마야만 남았다 내 엉덩이 파아란 몽고반점으로 남았다 에밀레여, 제 슬픔 스스로 꼭지 물려 달래고 있는 범종의 유두(乳頭)로 남았다 소리의 유두가 보였다 배가 고팠다 엄마야

 

[시평]

사람에게 절대의 언어라는 것이 있을까. 아마도 있다면, ‘엄마야’라는 그 말일 것이다. 가장 절박한 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 ‘엄마’. 그렇다. 그래서 엄마야를 부르고 나면 다른 말들은 다 잊어버린다. 소리는 물론이고 글씨조차 쓸 수가 없다. 그래서 엄마는 우리에게 둥근 절대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엄마’는 우리에게 있어, 우리의 근원적 존재를 인식시켜주는 엉덩이에 남아 있는 파아란 몽고반점과도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가 하면, 종을 울리게 하기 위하여 공양(供養)으로 바쳐진 어린아이의 아픔이 남아 우는 종 에밀레종, 그 범종의 슬픈 유두(乳頭)가 아닌가. 

엄마를 생각하면, 늘 그리움의 배가 고프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지는 그 그리움의 배고픔. 엄마는 우리에게 그러한 존재이다. 부르고 나면 다른 말은 모두 잊어버리는, 운명과 같이 내 엉덩이에 부치고 평생을 살아야 하는 푸르른 몽고반점과 같은, 아니 애처롭게 매달려 있는 법종의 유두와 같이, 그래서 늘 징징이며 그리움의 배고픔을 울어야 하는, 그 배고픔의 그리움을 달래주는 아, 아 어머니. 우리 어머니의 그 젖꼭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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