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장미대선이 일주일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이번 대선에서는 사상 유례없이 가장 많은 후보자 13명이 나선 가운데 유력 후보 간 입심 경쟁이 치열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유권자들에게 후보자 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한 TV토론회가 5월 2일 한 차례를 남겨두고 있는바, 그간 실시된 토론에서는 ‘누가 대통령으로서 훌륭한 재목감인지’ 또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이 시기에 뛰어난 리더십으로 난국을 잘 대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 검증이 부족했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그나마 경제 정책을 놓고 펼쳐진 4차 TV토론회가 후보자 간 집중 검증 방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지금까지의 네거티브 전에서 벗어난 점은 다행스럽긴 하다.

이날 다섯 후보들은 자신과 소속 정당이 발표한 경제 정책에 대하여, 또 상대방 후보의 실현불가능하거나 재정 수요를 간과한 경제 대응에 대해 치열한 검증을 벌이며 격돌하기도 했다. 후보의 여러 가지 제안 가운데 내용적으로나 시간에서 단연 비중이 많은 것은 ‘복지’와 이와 관련된 ‘재원’ 대책이었다. 복지 문제는 제도를 통해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긴 해도 공익에 유용하므로 국민이 작은 세금으로 가능한 한 더 많은 복지 혜택을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비록 현실의 국가경제나 가계가 어렵다고는 하나 과거 50~60년대 보릿고개 시대처럼 궁핍 이 문제는 아니다.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성장하다보니 먹고 사는 걱정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개인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까, 빈부 간 격차나 기회균등을 포함한 공정한 사회시스템이 이루어지나 이런 문제들인 바, 그 중심에 ‘복지’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후보들은 제각기 복지 정책을 내세우며 때로는 인기영합주의로 유권자들의 표심을 흔들고 있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노령연금’이 사회 이슈화된 이후 65세 이상 노인들 중 70%에게 기초연금이 지원됐고, 우리 사회에서 복지는 일반화됐다. 과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지원되던 사회복지가 그 본질을 달리해 모든 국민생활의 안정성 향상을 위해 점차 확대돼 가고 있는 과정이다. 기초연금뿐만 아니라 영유아, 아동들에게도 확산되고 있으니 국민 삶의 질에 대한 기준을 높여 국민 전체의 행복에 중점을 두고 노력하는 복지정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국민이 사회구성원들의 안정되고 행복한 삶이 복지국가의 당연한 귀결점이라 받아들이고 있으니 대선 후보들의 복지공약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대선 후보는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하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유권자 비율이 가장 높은 60세 이상(전체의 24.4%)에 대한 공약이 적극적이다. 기초연금(현행 하위 소득자 70%에 최대 20만원) 인상을 들고 나오는데 다분히 노인층의 표심 공략인 셈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내년부터 지급액을 25만원으로 올린 뒤 2021년부터 30만원으로 인상하는 공약을 내놓았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소득 하위 50%에 30만원, 나머지 20%에 20만원을 지급 공약을 발표했다. 타 후보들도 뒤질세라 아동수당 10만원 신설 등 여러 가지 복지 공약에 혈안이다.

이 문제에 관해 우리는 경험과 현실을 통해 잘 알고 있다. 5년 전 대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 지급’ 기초연금 공약을 공언했다. 하지만 당선된 이후 정부재정이 부족한 점을 들어 대상자를 70%로 축소해 시행했으니 그 당시 복지 공약은 공약(空約)으로 끝이 났고, 이것은 사실이고 엄연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후보들은 기초연금, 아동수당 등에 이어 재원 대책을 고려하지 않고서 공무원 확충 공약까지 들먹이고 있는 바, 충분한 재원 대책이 없는, 또 정부의 재정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복지는 독이 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소위 ‘포퓰리즘(populism)’은 선거 때마다 나오는 단골 메뉴다.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에서 유래된 이 말은 ‘대중’ ‘민중’이라는 뜻인데, 포퓰리즘은 ‘대중의 견해를 대변하고자 하는 정치사상과 활동’으로 좋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선거 때마다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한 ‘인기영합주의’로 인해 부정적 의미로 변색됐고 심지어 요즘은 표(票)를 얻기 위해 실현가능성 없는 선심성 공약을 마다하지 않는 ‘표(票)퓰리즘’이 판을 치는 이상한 선거판이 되고 말았다.

그동안 이 땅의 낡은 정치인들은 ‘국민’이라는 용어를 자기 편의적으로 사용해왔고, 오로지 자신만이 국민을 위해 일하고 국민대표라는 착각에 빠져들기 일쑤였다. 지금도 후보들은 어떻게든 표를 얻기 위해 인기몰이에 매몰돼 있으니 어쩌면 진정한 포퓰리스트로 변신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이런 시기에 미국 프린스턴대학 뮐러 교수의 ‘누가 포퓰리스트인가’라는 책자가 눈길을 끈다. 실증(實證)을 통해 나타난 포퓰리스트 지도자는 승리자 입장에서도 늘 희생자처럼 행동한다는 것이고, 집권하고서도 국민을 계속 분열시키고 동요시켜 민주주의 토대를 무너뜨렸다는 대목이 놀랍다. 포퓰리스트 지도자에 대한 뮐러 교수의 주장이 섬뜩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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