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포된 구금자들을 구타하는 장면. (출처: 아디 인권실태보고서)

“헬리콥터에서 2시간 총기난사… 남편 죽고 아들까지”

‘이슬람 믿는다’는 이유로
개종강요·폭정 당하는
미얀마 소수 로힝야족

강간에 집은 불태우기도
‘인종청소’ 의혹 제기돼
정권 “과한 표현이다”

[천지일보=차은경 기자] “떠나라 너는 이 나라 국민이 아니다.”

2016년 10월 집에 들이닥친 군인들이 누르 베검(25)씨를 구타하며 하던 말이다. 이날 군인들은 그녀가 보는 앞에서 아버지를 총살했다. 납득할 만한 설명도, 이유도 없었다. 늙어서 괜찮을 거라던 아버지는 힘없이 끌려나가 한마디 유언도 남기지 못했다. 15살이었던 남동생도 끌려갔다. 혐의가 무엇인지, 어디에 구금됐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동생은 지금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살해됐다고 포기하라고 한다. 아버지도 동생도 미얀마에서 나고 자랐지만 떠나야 했다. 그도 피난처를 찾아 방글라데시로 월경해야 했다. 군인들에게 그와 그 가족들은 그들이 보호해야 하는 자국민이 아니었다.

이슬람교와 불교가 충돌하며 미얀마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은 심각한 인권침해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간헐적으로 소개되는 언론기사 외에는 이에 대응하는 인권단체도 드문 상황. 28일 ‘미얀마 소수민족 로힝야 인권침해 실태와 대응’ 집담회에서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아디) 상근활동가 김기남 변호사는 로힝야족의 실태를 낱낱이 전했다. 그는 “우리 사회는 이웃 나라의 심각한 인권사안에 대해 무관심하다”며 “로힝야족 인권침해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소개하고 우리 사회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 미얀마 군대. (출처: 아디 인권실태보고서)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민족

로힝야족은 이슬람 소수민족으로, 미얀마 군사정부는 불교국가인 미얀마에서 로힝야족에게 불교로의 개종을 강요하면서 토지를 몰수하고 강제노동을 시키는 등의 폭정을 행사하고 있다.

로힝야족에 대한 억압은 사회 구조적으로 이뤄진다. 발제문에 따르면 로힝야족은 국적을 받을 수 없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다. 인근 지역 방문도 허가를 받거나, 통행료 등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가능하다. 결혼은 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직업을 구하는데 제약이 있고, 공직에는 나갈 수 없다.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 정부의 박해는 역사가 길다. 로힝야족은 버마족(미얀마족, 미얀마에서 가장 다수인 종족)이 주도하는 독립운동의 흐름에 동참하지 않고, 다른 소수민족과 유사하게 자신들의 자치독립에 유리한 행보를 걸어왔다.

이에 대해 불교도인 미얀마족 중심의 군부정권은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이를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로힝야족 전체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이를 빌미로 정권은 또 다른 소수민족이자 불교도인 라카인족과의 분쟁을 방관 또는 조장하거나 이를 빌미로 로힝야족을 차별했다.

1978년 미얀마 정부는 무슬림 반군토벌을 명분으로 내걸고 ‘킹드래곤 작전’으로 로힝야족 20만명을 몰아내고, 1991년에는 25만명을 몰아냈다. 2012년에는 라카인 소수민족과의 충돌로 최소 로힝야족 200여명이 사망하고 10만여명이 격리됐다.

이 사건은 일부 로힝야 청년이 불교도 여성을 강간한 사건으로 촉발돼 라카인 불교도들이 로힝야족을 보복 공격하면서 격화됐다. 이로 인해 미얀마 전역에 반무슬림 정서의 확산은 물론, 불교도 극우주의 세력 주도의 혐오 발언이 심각한 수준으로 증가하는 계기가 됐다.

▲ "남편이 잡혀갔어요" 피해 증언하는 로힝야족 여성들. (출처: 연합뉴스)

◆미얀마군의 로힝야족 토벌작전

이러한 억압 속에서 2016년 10월 미얀마군의 로힝야족 토벌작전이 진행됐다. 2016년 10월 9일 새벽 200~400여명의 로힝야족 남성들이 검, 새총 등으로 무장하고 방글라데시 접경지에 위치한 라카인주 북부 마웅도우 지역의 경찰초소 세 곳을 습격했다. 그중 한 곳은 국경경찰대 본부였다. 이 습격으로 경찰 9명이 사망하고 경찰 6명과 경찰관의 부인, 민간인 1명 등이 부상을 입었다.

미얀마 정부는 이들이 지하디스트(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조직원)이며, 중동의 테러집단과 연계된 국가의 주권을 훼손하는 집단으로 인식하고 대응했다. 미얀마 군대와 국경경찰대는 본격적인 토벌작전에 나섰다. 관련자 색출과 무기회수, 조력자 체포 등을 위해 로힝야족이 주로 거주하는 마웅도우 지역을 완전히 봉쇄했다. 라카인 북부에 위치한 대부분의 로힝야족 무슬림 거주지역은 출입이 전면 통제됐다.

“어느 날 150여명의 군인과 경찰이 무장을 하고 마을로 들이닥쳤어요. 헬리콥터가 동원돼 약 2시간 동안 자동화기를 무작위로 난사했어요. 우리 집으로 들이닥친 군인들은 남편을 체포하고 심각하게 구타했어요. 30분 정도 이어졌죠. 남편은 입에서 피를 토하고 온몸이 피로 범벅됐어요. 어느 군인은 두 손으로 2살 난 아들을 거꾸로 들어 땅에 내려찍어 죽였어요.”

아디의 인터뷰에 따르면 군인들은 무작위로 총기를 난사하거나 근거리 조준사격을 통해 로힝야 민간인들을 살해했다. 유아를 포함한 아동들도 희생됐다. 유아를 우물에 던지거나 땅에 내리쳐 죽이기도 했고, 흉기로 죽이기도 했다.

또 청장년 남성은 닥치는 대로 잡아 구타하고 아무런 이유 없이 체포해 어디론가 끌고 갔다. 이들은 대부분 행방불명됐고, 귀가한 사람 중 일부는 구타와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하거나 심각한 내외상으로 고통을 받았다.

여성들은 집단 강간을 당하기도 했다. 또 여성들을 학교 운동장에 모아놓고 강제적인 몸수색을 통해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거나 나체로 특정 자세를 취하게 한 후 성기를 촬영하는 등의 만행도 일삼았다.

토벌작전 이후 군대와 국경경찰대에 의한 인권침해 사례가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국제사회는 인도에 반한 죄 또는 인종청소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고,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 현장조사에 나온 부통령, 군과 경찰대 고위관계자 모습. (출처: 아디 인권실태보고서)

◆미얀마 정부의 대응

하지만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미얀마 정부는 이러한 인권침해에 대해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는 상황. 아웅산 수치는 지난 4월 7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인종청소라고 표현하는 것은 너무 과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로힝야 난민들은 등록된 또는 정식으로 인정된 난민이 아니기 때문에 유엔과 국제 NGO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국제기구의 활동도 치안 불안을 이유로 정부에 의해 제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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