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치스코 교황이 29일(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 스포츠 스타디움에서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프란치스코 이집트 첫 순방
종교간 분쟁·불화 해소 힘써
모든 종교인에게 평화 호소

종교 극단주의·증오심 비판
“한반도 긴장 너무 고조됐다
UN·제3국이 중재 나서달라”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교황으로는 17년 만에 이슬람국가인 이집트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슬람 종교지도자들을 만나 신의 이름으로 폭력을 거부하고 갈등과 분쟁을 평화와 대화로 이끌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건넸다. 돌아오는 길에선 북한과 미국의 갈등 속에 긴장이 고조되는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위해 유엔(UN) 등 국제사회의 중재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28일(현지시간)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 도착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틀간의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교황은 이날 카이로 땅을 밟은 뒤 기자들에게 “이번 방문은 통합과 화합의 여행”이라고 밝혔다. 카이로 국제공항에선 샤리프 이스마일 이집트 총리와 가톨릭 사제들이 교황을 반겼다. 가톨릭 교황이 이집트를 방문한 것은 지난 2000년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두 번째다.

무슬림이 다수인 이집트는 아프리카 대륙의 대표적인 이슬람 국가다. 교황의 이집트 방문은 무슬림과 기독교인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를 촉구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 교황은 28일(현지시간) 이집트에서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 학생들이 신의 이름으로 폭력을 거부하고 평화, 대화, 화해를 통해 분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촉구했다. (출처: 뉴시스)

최근 이집트에서는 종교 간 불화가 심화됐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이집트의 콥트교회는 소수종단으로 오래 전부터 차별을 받아왔다. 지난달 9일 이집트 북부의 한 콥트교회에서 연쇄 폭탄테러로 47명이 사망하자 이집트 정부는 3개월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상태다. 이러한 이유로 교황의 일정에 맞춰 이집트 내 경계는 대폭 강화됐다. 일부 교회 인근에는 병력이 배치되고, 검문검색이 삼엄했다. 하지만 교황이 다른 나라의 일정과 같이 이집트 방문도 평소와 같은 일반 차량을 이용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8일(현지시간) 이집트에서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 학생들이 신의 이름으로 폭력을 거부하고 평화, 대화, 화해를 통해 분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황은 이날 수니파 이슬람의 최고 교육기관으로 꼽히는 알아즈하르 대학에서 열린 국제평화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길 바란다’는 의미의 아랍어 인사인 ‘앗살라무 알라이쿰’이라며 첫 인사를 보내 박수갈채를 받았다.

교황은 “이집트의 고대 문명이 지식과 ​​개방된 교육에 대한 탐구를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면서 “종교적 극단주의의 ‘야만성’이라고 불렀던 것과 맞서기 위해 오늘날에도 비슷한 약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종교지도자들에게는 “종교의 이름으로 모든 형태의 증오심을 정당화하려고 하는데 이러한 시도들은 신에 대한 우상 숭배”라고 강한 비판을 가했다.

이집트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를 원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 자리에는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외교관들, 이슬람 이맘들이 대거 참석했다.

▲ 교황이 29일(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에 위치한 스포츠 스타디움에서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골프 카트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삼엄한 경비 속에서도 교황은 환영 인파에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신의 이름으로 행하는 폭력은 없다”

이틀째(29일) 일정으로 교황은 수도 카이로 동부에 있는 스포츠 스타디움에서 대규모 공개 미사를 집전하며 ‘광신주의’에 대한 경계를 촉구했다. 이집트 국영 TV로 중계된 가운데 관중석을 가득 메운 2만 5000여명의 인파를 향해 교황은 손을 흔들어 보였다. 대규모 야외 미사에는 이집트 가톨릭 신자 등이 흰색, 노란색의 풍선과 바티칸 국기를 흔들며 교황을 반겼다.

교황은 “평화만이 거룩한 것이다. 신의 이름으로 행할 수 있는 폭력 행위는 없다”며 “선동적인 포퓰리즘이 부상하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집트인들에겐 자비로운 이들이 될 것을 호소했다. 그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광신은 관용의 광신”이라고도 말했다. 이어 “다른 어떠한 광신은 신에게서 나오지 않고 그것은 신을 기쁘게 하지도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종교인 사이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과 평화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진정한 신념이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며 “이 신념은 다른 이들을 넘어서야 할 적으로 보게 하지 않고 사랑하는 형제, 자매로 보게 한다”고 역설했다.

콥트교를 비롯해 이집트 기독교계 신자는 약 27만 2000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 중 콥트교는 이집트 전체 인구의 약 10%로 이슬람 지역에선 최대 그리스도 교회로 꼽힌다.

▲ 교황이 29일(현지시간) 이집트에서 바티칸으로 귀환하는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한반도 분쟁 해소에 제3국·UN 중재 역할 강조

이틀간의 일정을 모두 마친 교황은 바티칸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북한과 미국의 갈등 속에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는 점을 이야기하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교황은 기자들에게 “북한의 미사일 문제는 1년 넘도록 일어나고 있지만, 이제는 상황이 지나치게 고조된(too hot) 것 같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교황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제3국과 유엔(UN)의 역할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교황은 “광범위한 전쟁은 인류의 적은 부분만 파괴하는 것이 아닌 인류와 문명의 선한 부분들까지,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라며 “이는 끔찍한 일이다. 오늘날의 인류는 이를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북핵 해결에 관련 교황은 “UN의 리더십이 갈수록 둔화됐다. UN은 리더십을 다시 회복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가 인류의 미래가 달린 일이므로 외교적인 해법과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며 “세계에는 수많은 협력자가 있으며 노르웨이처럼 중재자로 나서려는 나라도 있다. 노르웨이는 도와줄 준비가 항상 돼있다”고 설명했다.

노르웨이는 1990년 초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협상을 주도해 오슬로 협정 체결을 끌어낸 경험이 있다. 이 오슬로 협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첫 공식합의 결과물로, 서안 지역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들어서는 계기가 됐다.

유엔이 한반도 분쟁 해결에서 리더십을 되찾아야 한다는 교황의 메시지에 국제사회가 어떤 반응을 나타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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