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 스틸 (제공: CJ엔터테인먼트)

낮에는 임금과 사관, 밤에는 비밀 수사관
사극에서 볼 수 없던 참신한 볼거리 제공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배우 이선균과 안재홍이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감독 문현성)’으로 첫 사극에 도전했다. 어라, 그런데 단순한 사극이 아니다. 주인공 ‘예종(이선균 분)’은 보통 왕들과 다르게 직접 사건을 파헤쳐야 직성이 풀린다. 그 옆엔 어리바리하지만 한번 본 건은 무엇이든 기억하는 재주를 가진 신입사관 ‘이서(안재홍 분)’가 늘 동행한다.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예리한 추리력의 막무가내 임금 ‘예종’이 천재적 기억력의 신입사관 ‘이서’와 함께 한양을 뒤흔든 괴소문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과학수사를 벌이는 코믹수사활극이다. 다음은 영화 내용을 바탕으로 주인공 ‘예종’의 입장에서 재구성한 내용이다.

1468년 조선. 난 논어보다 해부학, 궁궐보다 사건 현장이 적성에 맞는 특별한 임금 ‘예종’이야. 나의 뛰어난 의술·과학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조선에서 발생한 다양한 사건을 해결해야 직성이 풀려. 나의 왕성한 호기심은 과감한 행동력을 발휘하게 해서 사건이 있는 곳은 어디든 바람처럼 떠나지.

▲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 스틸 (제공: CJ엔터테인먼트)

얼마 전 나를 보좌하기 위해 한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는 ‘이서’가 들어왔어. 처음 인상은 충만한 의욕과 달리 어리바리하고 손도 퉁퉁해서 뭘 할 수나 있을까 생각이 됐지만 한번 본 궁궐 천장에 그려진 용의 꼬리 비늘 수를 맞추는 비상한 능력을 보고 그 아이의 이름을 오보(五步) 이상 떨어지지 말라는 의미에서 ‘오보’라고 부르기 시작했어.

최근 한양에 있는 백성들 사이에 기괴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 저잣거리를 걷던 백성 중 한 명의 머리에서 저절로 불이 붙었고, 어부들은 괴어(怪魚)를 발견해 배가 뒤집히는 등 심상치 않은 소문들이지. 난 이 소문을 직접 알아보기 위해 ‘오보’와 함께 궁궐을 나섰지. 한데 수상한 소문 뒤로 음침한 음모가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영화는 사극이라는 탈을 쓴 코믹 탐정물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조선명탐정’ 시리즈처럼 기존 사극의 격식과 전형성을 깨고 참신한 소재와 재미로 차별화된 카드를 전면에 세웠다. 사실 사극과 탐정물이라는 소재는 왕과 신하라는 신분 차이를 제외하고 김명민, 오달수 주연의 ‘조선명탐정’과 별반 다를 게 없다.

▲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 스틸 (제공: CJ엔터테인먼트)

퓨전 사극을 넘어 판타지에 가까운 이 영화의 차별점은 단연 이선균·안재홍이라는 카드다. 이선균과 안재홍은 첫 사극 도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완벽하게 소화했다.

이선균은 기존의 근엄하고 품위 있는 왕의 모습을 탈피했다. 낮에는 사리사욕에 눈먼 대신들 앞에서 군왕으로서의 업무를 보고 밤에는 사건 현장을 찾아 거리를 활보한다. 그는 고전체 말투에 현대어를 더해 다채로운 매력을 선보였다. 사실 이런 왕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이선균은 특유의 동굴 목소리와 연기력으로 ‘톤 앤 매너(tone and manner)’를 잡아간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정봉’ 역으로 시청자들에게 존재감을 드러낸 안재홍은 신입사관 ‘이서’로 분해 유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특히 기억력을 더듬을 때 관자놀이에 가져다 대는 한마디 구부러진 검지와 중지 손가락은 영화의 씬스틸러다.

이선균과 안재홍은 때로는 갑(甲)질하는 상사와 당하는 부하 직원처럼, 형과 동생처럼 아옹다옹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기지를 발휘해 최고의 호흡을 자랑하는 콤비가 된다.

▲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 스틸 (제공: CJ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독창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영화 속 주요 배경이 되는 ‘예종’의 비밀 공간은 사건을 분석하는 개인적인 공간이자 예문관 신하들의 비밀스러운 회의장소다. 서양식 건축 양식을 연상케 하는 높고 둥근 아치형 천장은 특별함을 더했다. 궁궐과 어울리지 않는 해부학 자료들, 편자희(마술쇼)에 사용되는 소품 등 ‘예종’의 캐릭터를 잘 드러낸다. 또 조선판 잠수함인 ‘잠항성’이 등장하는 오두막집은 암석과 나무뿌리로 구성돼 자연적이면서도 과학과 화학 원리에 기반을 둔 창의적인 공간이다.

이 영화에서 주목해봐야 할 것은 빛의 사용이다. 조선 시대 궁궐이 배경인 만큼 자연광을 활용했다. 이 때문에 배우 얼굴에 자연스럽게 그늘이 졌다. 이 그늘은 상황을 극대화하고, 궁궐의 아름다움을 뽐내기 충분했다.

문제는 기시감이 드는 설정과 예상되는 뻔한 이야기 전개다. 앞서 언급했듯이 ‘조선명탐정’과 견주어 비교되는 것이 사실이다. 한데 어우러져야 할 이야기와 전개, 액션이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영화는 26일 개봉해 절찬 상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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