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 사진은 1932년 5월 1일자 도쿄니찌니찌신문 호외에 보도됐던 연행 모습. 흐린 날씨와 필름 전송 과정에서 발생된 문제로 윤 의사 얼굴과 중절모자 수정처리해서 보도됨. 오른쪽 사진은 1932년 5월 1일 오사카 아사히신문 호외 2면에 보도된 사진. 흰 물체는 일본군의 군도(칼)며, 삼엄한 경계 속에 연행되고 있으며, 일반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진 (제공: 윤주 ㈔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 상임고문). ⓒ천지일보(뉴스천지)

中총통 장제스 마음 사로잡은 의거
카이로회담서 조선독립 적극 주장
진위논란에 교과서 삭제 ‘우여곡절’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윤봉길(1908~1932) 의사의 상해의거(1932년 4월 29일) 85주년을 맞아 친조카인 윤주 ㈔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 상임고문이 의거 직후 윤 의사가 연행되는 2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 겸 전승축하기념식이 열린 중국 상하이 홍커우공원(현재는 루쉰공원으로 변경)에서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에 시라카와 일본군 대장과 일본인 거류민단장 가와바다가 폭사했고,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중장과 제9사단장 우에다 중장, 주중공사 시게미쓰 등이 중상을 입었다.

사진은 거사현장에서 체포돼 일본순경과 군인들에게 이끌려 연행될 당시 찍은 모습이다. 왼쪽 사진은 1932년 5월 1일자 도쿄니찌니찌신문(東京日日新聞) 호외에 보도됐던 연행 모습이다. 당시 도쿄니찌니찌신문 특파원 샤토오(佐藤) 기자가 촬영한 것으로 국내 신문에는 보도된 적이 없었다.

이 사진이 특이한 점은 거사 당일 흐린 날씨와 필름 전송 과정에서 발생된 문제로 인해 사진의 선명도를 높이기 위해 사진을 수정했다. 우선 윤 의사가 당시 쓰고 있던 중절모자가 벗겨져 위로 치솟은 것과 헝클어진 머리 모양을 각각 가지런히 정리된 모습으로 수정했다. 또한 체포과정에서 구타당해 오른쪽 안면에 난 상처와 흐르는 피 자국을 지웠다. 이로 인해 사진 속의 윤 의사 모습이 실제 모습과 같게 보도됐다. 수정된 사진을 보면 윤 의사임을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오른쪽 사진은 1932년 5월 1일 오사카 아사히신문(大阪 朝日新聞) 호외 2면에 보도된 윤봉길의사 연행사진으로, 흰 물체는 일본군의 군도(칼)며, 삼엄한 경계 속에 연행되는 것을 더 느낄 수 있다. 이를 찍은 기자의 사진은 일반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진이다. 기존에 나온 사진은 다른 기자가 찍은 것으로 연행되는 시점과 포착 순간이 살짝 차이가 나는 사진이라 하겠다. 사건 당시 연행되는 순간 같은 공간과 비슷한 위치에서 찍었어도 셔터를 누르는 타이밍이 조금씩 차이가 있었던 것. 그래도 워낙 긴박한 순간 거의 비슷한 위치와 속도로 찍었기 때문에 흡사해 보이기도 한다.

윤 의사 연행사진은 3컷 정도가 남겨졌는데, 한때 진위 논란으로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윤 의사가 거사 직후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구타당해 얼굴에 피를 흘리고 연행된 터라 윤 의사가 아니라는 논란이 일었다. 아사히신문에 보도됐던 연행사진은 1976년 보물로 지정됐으나 체포된 사람이 윤봉길 의사와 닮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진위 논란이 일었고, 이런 와중에 2008년 4월 보물에서 해제됐는가 하면, 교과서에서도 내용이 빠지는 등 진통을 겪었다. 윤주 상임고문이 이를 바로잡기 위해 여러 증거물을 수집하는 등 부단히 노력한 덕분에 국가보훈처에서 진짜가 맞다는 공식결론을 내렸으나 이후에도 일각에서는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는 등 시련을 겪었던 연행사진이다.

윤주 상임고문은 “중국 총통 장제스는 중국 100만 대군도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며 감동을 받아 제2차 세계대전 말 전후처리문제를 사전협의하기 위해 열린 카이로회담에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고, 이로 인해 많은 식민지 국가 중 유일하게 우리 조선만이 전후 즉시 독립할 수 있었다. 곧 윤 의사 의거는 나라를 다시 찾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거 현장 자리에는 윤봉길의사기념관 ‘매정’을 건립한 이후 이곳 앞 광장에서 매년 의거 일에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와 중국 홍커우구 인민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한중공동기념식을 거행해오고 있다”면서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정작 대한민국 정부는 윤 의사 기념과 관련 그 사업이 뜨뜻미지근하다”고 꼬집었다. 이에 “우리 정부도 윤 의사의 의거현장에서 거행되는 한중공동기념식에 관심을 갖고 이 기념사업을 확대하는 등의 활동으로 한중관계 개선에 힘을 기울였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이번 연행사진을 통해 윤 의사의 의거를 다시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윤봉길 의사는 체포된 후 5월 25일 상하이 일본군 군법회의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그해 11월 18일 일본으로 압송돼 가나자와에서 12월 19일 총살형으로 순국했다. 광복 직후 유해 발굴 작업을 통해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 묘소가 마련돼 현재 이곳에서 고이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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