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일 대구 북구 태평로 대구역 부근 벽면에 제19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포스터가 부착돼 있다. 한 시민이 지나가면서 포스터를 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안철수 전략투표층 속속 회군
“대구에서 마 洪밖에 더있나”
“安은 지조없고, 劉는 공격만”
文 당선 우려에 ‘갈팡질팡’도
“洪 안올라가면 安 찍을수도”

[천지일보=임문식 기자] “홍준표 찍을려 합니더. 요는 원래 박근혜 (밀어준 곳) 아입니까.”

대구 표심이 또다시 흔들리고 있다. 이른 ‘홍찍문’으로 표현되는 전략적 보수층이 ‘홍찍자’로 다시 결집하고 있는 것. 대선이 13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다. 26일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에선 이 같은 기류가 여실히 감지됐다.

대선 레이스 초기만 해도 대구에선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밀자는 분위기가 파다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여파 속에 와해된 대구·경북 표심이 뿔뿔이 흩어지면서다.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할 보수정당마저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새누리당으로 갈라져버렸다. 대구 유권자들 사이에선 어차피 당선이 어려운 보수 후보를 찍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돕느니 차라리 중도에 가까운 안 후보를 밀자는 심리가 작동했다. 문 후보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반문(反文)심리’가 기저에 깔린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기류는 투표일이 코앞에 다가오면서 다시 급변하는 형국이다. 홍 후보 대신 안 후보를 선택했던 전략적 투표층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날 대구 지역 곳곳에선 안 후보에서 홍 후보로 생각을 바꿨다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중구 동성로 2.28기념중앙공원에서 산책하던 70대 노인은 “50~70대는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면서도 “처음엔 안 후보 쪽이었는데, 지금은 홍 후보로 마음 가는 사람들이 좀 있다”고 말했다. 안 후보를 밀어 문 후보를 막자는 홍찍문 심리가 최근 들어 흔들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문재인을 떨구자 해가 안철수 찍어줘야 안 되겠나 했는데, 홍준표 쪽으로 돌아섰지 않습니까. 내 아들도 ‘친구들이 안철수는 아니다. 홍으로 기울었다’ 하던데요.”

서문시장에서 옷 수선을 하는 70대 할머니도 그랬다. 원래는 안 후보를 찍으려다가 가족의 말을 듣고 홍 후보로 생각을 바꿨다. “대구 경북에서 마 그 사람밖에 더 있나” 그의 말에 옆에 있던 60대 남자 손님은 “뭐 되겠어요? 거기 밀면 문재인 돼삔데”라고 끼어들었다. 이 손님은 자기는 보수 지지자이지만 이번 투표엔 불참하겠다고 했다.

서문시장 입구에서 만난 이우식(58)씨는 “대구·경북은 홍준표가 막말해도 홍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주변 분위기를 전했다. “홍 후보가 좋아서라기보다는 문 후보가 싫고, 홍이 그래도 문 후보보다는 낫다카이 찍을라는 거지.” 안 후보와 바른정당 유 후보는 어떻냐고 묻자 쓴 소리가 나왔다. “안철수는 이랬다저랬다 지조가 없고, 유승민은 자기 정책은 얘기 않고 공격하기만 하데.”

실제로 TK 표심의 재결집 현상은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20일 전국 성인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21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구·경북 지역의 홍 후보 지지율은 26%로 전주대비 3배로 올랐다. 반면 안 후보는 전주 48%에서 23%로 반토막이 났다. 문 후보는 24%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후보들의 검증 공세가 본격화된 가운데 각종 현안 문제에서 안 후보의 모호한 행보가 보수 지지층의 이탈을 부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서문시장 내 상가에서 만난 50대 상인도 “안철수가 대안이라고 말들 하는데, 믿음이 안 가니까, 과연 저 사람을 찍어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입니더”이라며 안 후보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문제는 홍 후보로의 결집이 결과적으로 본의 아니게 문 후보 당선이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홍 후보의 득표율이 현재의 5자 구도에서 최종적으로 문 후보를 넘지 못할 경우다. TK 보수 지지층으로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안철수라는 차선책마저도 물거품이 되는 셈이다. 안 후보와 홍 후보 사이에서 또다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는 TK 표심에 깔린 딜레마다. 홍 후보로의 결집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홍 후보와 안 후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경북대학교 북문에서 35년간 구두 수선방을 운영해 온 박광수(64)씨는 “사실 홍 후보를 찍고 싶은데, 지지율이 안 올라가니까 갈등이 좀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홍 후보 대신 당선 가능한 사람이 안 후보니까 남은 기간 지지율 추이를 보고, 홍이 올라가면 거기를, 올라가지 않으면 안 후보를 찍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변에도 그런 생각을 가진 이가 많다고 그는 전했다.

TK 표심이 보수 후보에 몰표를 주던 예전 같지 않다는 점도 홍 후보에겐 걸림돌이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민주당 소속 김부겸 의원과 민주당 출신 무소속 홍희락 의원이 대구에 승리 깃발을 꽂으면서 표심의 변화는 이미 감지됐다. 이날 대구 지역에서 만난 20~30대 젊은층 사이에서도 홍 후보를 지지하는 이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서문시장에서 30년 동안 장사를 해온 오대용(64)씨는 “대구라고 다 보수는 아이고, 인물도 보고, 정책도 다 보고, 다 봅니더”라고 했다.

TK 표심에 형성된 상당한 부동층을 고려하면 결국 뚜껑을 열어봐야 결과를 알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동성로 대구백화점 인근에서 만난 원모(57)씨는 대구 표심의 향배를 묻는 질문에 “홍 후보로 밀어야 된다는 얘기가 주변서 나오지만, 워낙 박근혜 대통령이 그리 됐으니 보수층도 마음 변할지 모르지요, 투표가 돼 봐야 알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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