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물머리에 황포 돛단배가 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북한의 금강산에서 발원한 금강천이 남으로 흘러 북한강을 이루고 또 그렇게 흐르고 흘러 한강을 이루며 이윽고 저 먼 바다로 나아가 망망대해를 이룬다. 강물은 그렇게 이념도 사상도 뛰어넘어 결코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분단의 양끝을 흐르며 반으로 잘린 국토의 허리를 따스하게 끌어안는다.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민통선 안에 위치한 두타연(頭陀淵)계곡을 필두로 북한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남한강과 합류하여 한강을 이루는 지점인 양수리까지, 그 사이에 만나는 풍경이 글의 소재가 되고 그 풍경이 간직한 세월이 이번 답사의 이야기가 됐다.

▲ 두타연 ⓒ천지일보(뉴스천지)

두타연에서 금강산까지 32㎞

두타연(頭陀淵)은 휴전선에서 발원한 수입천 지류의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북방에 위치한 연못이다. 금강산으로부터 내려온 물이 하나를 이룬 곳. 1000년 전 고려시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두타사라는 절이 있던 곳이라 하여 두타라는 이름을 가져왔다. 세상의 모든 번뇌와 욕심을 씻어낸다는 의미의 두타. 서울에서 한참을 달린 끝에 만난 두타연의 풍광은 과연 세상의 시름을 내려놓을 만했다.

금강산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바위 사이로 떨어지며 형성된 폭포와 마치 병풍을 두른 듯 주변을 감싸고 있는 족히 20m는 돼 보이는 암석은 마치 그 아래로 형성된 소(沼)를 보호하는 듯했다. 그 병풍 같은 암석의 한쪽(폭포를 바라보는 기준으로 오른쪽)에 동굴이 하나 있는데 ‘보살이 덕을 쌓는다’는 의미의 보덕굴이다.

두타연에서 몸을 돌려 뒤돌아서면 출렁다리로 불리는 ‘두타교’가 보인다. 과연 저 출렁이는 다리를 가로질러 건너면 번뇌가 사라질까. 아니면 세상의 욕심을 조금은 내려놓을 만큼 내면의 키가 한 뼘 정도는 자라있을까. 두타교를 건너며 오만가지 생각이 지나는 것을 보니 해탈의 길이 아직 멀게만 느껴졌다. 허나 두타교에서 바라본 두타연의 풍광은 더욱 아름다웠다. 이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백석산의 아름다움이 햇빛을 받아 더욱 눈부시게 반짝였다. 흰 돌로 된 산이라는 이름 그대로 맑고 깨끗한 이미지를 안긴 곳이 바로 이곳 두타연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두타연을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민통선 안에 있기 때문이다. 방산면 평화누리길 이목정안내소 또는 동면 평화누리길 비득안내소에서 출입신청서를 작성한 후 신분증을 맡기면 위치추적목걸이(태그 출입증)를 건네준다.

▲ 울업산에서 바라본 청평호 ⓒ천지일보(뉴스천지)

일곱 고개 넘어 ‘신선봉’ 정상에 오르다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 호명리 오대골과 설악면 회곡리 가래골 사이의 북한강 좁은 수로에 청평댐이 건설되면서 등장한 청평호는 주위의 산과 호반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으로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다. 특히 호수 주위에 호명산(虎鳴山)과 울업산(蔚業山) 등이 둘러싼 절경은 가평 8경의 제1경인 청평호반(淸平湖畔)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청평호 북쪽의 의암호, 소양호, 춘천호, 파로호 등지의 어류들이 북한강을 따라 내려와 서식하면서 낚시터로도 유명한 곳이다.

답사 일행은 청평호를 둘러싼 산 중 울업산에 오르기로 했다. 청평호의 아름다운 모습을 조망하기에 제격일 뿐 아니라 산 자체가 숨겨진 명산이라는 이유에서다. 울업산의 최고봉인 신선봉은 해발 381m로 산행을 시작하는 일행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허나 이게 웬걸. 고개 하나 넘어 다 왔나 싶으면 눈앞에 언덕이 또 하나 보이고, 이제 다 왔나 싶어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어 목적지를 바라보면 아직 멀기만 했다. 작은 고추가 맵다고 했던가. 다른 산들에 비해 언덕처럼 낮아보이던 ‘신선봉’은 쉽게 그 정상을 내주지 않았다. 선촌리 쪽에서 시작해 신선봉에 이르기까지 총 7개의 봉우리를 넘어서야, 아니 정복하고서야 정상에 설 수 있었다.

과연 정상에 오르니 그 옛날 신선들이 바둑과 장기를 두며 놀던 곳답게 돌로 만든 장기판이 놓여있었다. 가쁜 숨을 채 고르기도 전에 정상에서 바라본 청평호의 풍경은 수려했다.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 평온하면서도 탁 트인 시야가 속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신선봉이 있는 곳이 송산리, 정상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 고성리(高城里), 뒤편으로는 선촌리(仙村里) 그 이름도 범상치 않다. 이곳 가평, 특히 고성리 쪽은 북한강과 홍천강이 S자 모양(태극무늬)을 이루며 감싸 안는 형국이라 태평의 기운이 흐른다고 한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금강산으로부터 발원한 물이 철책을 따라 흘러 북한강을 이루고 가평에 이르러 마을을 끌어안으며 평화로움을 그리고 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 무엇도 거스르지 않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도 한데 어우러져 태평을 누리는 날이 하루속히 도래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또다시 일곱 봉우리를 넘어 산을 내려왔다.

▲ 두물머리 ⓒ천지일보(뉴스천지)

◆남과 북이 만나는 그곳, 두물머리

드디어 남과 북이 만났다.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兩水里)에 있는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의 물이 만나 하나를 이룬다는 뜻에서 합수머리로 불리기도 한다. 북과 남의 두 강이 어우러져 한강으로 흐르는 지점을 뜻하는 이곳은 자타공인 최고의 출사지로 꼽히기도 한다. 그 어느 곳에 눈을 두어도 한 폭의 그림이 되는 두물머리지만 4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느티나무와 황포 돛단배가 그 운치를 더하고 일교차가 심한 봄, 가을 새벽 물안개가 피어오를 때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금강산에서 발원해 흘러내린 북한강과 강원도 금대봉 기슭 검룡소(儉龍沼)에서 발원한 남한강의 두 물이 합쳐져 더욱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내는 이곳은 원래 매우 번창하던 나루터였다. 남한강 최상류의 물길이 있는 강원도 정선군과 충청북도 단양군 그리고 물길의 종착지인 서울 뚝섬과 마포나루를 이어주던 마지막 정착지였기에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팔당댐을 건설하면서 육로가 신설되자 쇠퇴하기 시작해 1973년 팔당댐이 완공되고 일대가 그린벨트로 지정된 후 어로행위 및 선박건조가 금지되면서 나루터 기능이 정지됐다.

분단과 전쟁 그리고 휴전. 우리 민족 앞에 놓인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과거이자 개척해야 하는 미래이기도 하다. 두물머리에서의 추억을 남기고자 그 오랜 기다림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처럼, 금강산에서부터 흐르는 물이 흐르고 흘러 남한강과 만나 하나를 이루고 저 망망대해로 내달리는 그 긴 기다림처럼, 우리 민족 또한 다시금 하나 되어 세상을 품을 그날을 그려본다. 바다로 나아가 다시 만날 두 줄기 강물을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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