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그맨 이동우. ⓒ천지일보(뉴스천지)

시각장애인으로서 다시 보는 세상이야기

[뉴스천지=장요한 기자] 지난 2005년 ‘망막색소변성증(RP)’ 진단을 받았다. 점차 앞을 볼 수 없다는 극도의 공포감이 몰려왔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 병을 받아들이는 데 5년이나 걸렸다.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19일  저녁 서울대 문화관 중강당을 찾은 개그맨 이동우(41)는 짙은 선글라스와 시각장애인용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었다. 그는 서울대생에게 고통스럽게 지내왔던 그간의 심정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작년 11월 말 방송에서 제 병을 공개했는데 그때는 3급 시각장애인이었어요. 그런데 반년도 안 돼 지금은 1급 시각장애인이 됐어요. 엄청난 진급이죠? 하하하.”

그가 가슴 아프지만 밝은 웃음으로 말했다. 그러자 조용했던 강당 내 분위기가 풀어졌다.

“고칠 수 없는 병은 기껏해야 100가지 정도나 될까 생각했는데 국내만 2~3천 종, 전 세계적으로 8천 종이 있다고 해요. 그 중에 하필이면 왜 나였을까. 완치사례가 한 번도 없는 이 병에 걸렸는지 이해가 안 됐고 원통했어요.”

망막색소변성증의 일반적인 첫 증상은 야간시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 같은 야맹증이 계속 진행되다가 시각을 잃게 된다. 현재 치료법이 없는 불치병이다.

“밤에 중앙선을 자꾸 침범하니까 운전하기가 힘들더라구요. 바로 앞에 있는 커피 잔도 발견하지 못하고 쓰러뜨리거나 쏟는 일이 잦았죠. 생활의 불편함을 느끼고 심각성을 느끼자 아내가 병원에 예약을 했어요.” 

이동우와 아내는 의사에게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얘기를 듣는다. 단어도 생소한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 이동우는 당시 심정을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다고 표현했다.
중도 장애인은 선천성 장애인에 비해 심리적인 충격과 압박감이 상당하다. 중도 장애인의 경우 4단계로 심리적 변화를 겪는다. 먼저는 장애 판정을 받은 후 ‘패닉’ 상태에 빠진다.

“귓전에서 불러도 전혀 들리지 않아요. 심하게 멍 때리는 거죠. 눈을 뜨고 있어도 무엇을 보는지, 음식을 먹어도 무슨 음식을 먹는지 알 수 없었어요. 내가 아니었거든요.”

이동우는 그렇게 패닉상태로 일주일을 보낸 이후 ‘거부’ 반응이 심하게 나타났다.

“내가 왜 이 병에 걸렸는지, 정확히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르니까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아무리 울고 기도를 하고 절규를 해봐도 용납이 안 됐어요.”

이동우는 백방으로 병원을 찾아다녔다. ‘오진’이라는 말을 들을까 싶어서다. 하지만 결국 ‘병이 걸린거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 그에게 ‘분노’ ‘폭발’의 감정이 솟구쳤다.

그는 뭐든지 파괴하고 싶고 화가 나는 이 시기를 3년이나 보내야 했다. 이 단계가 위험한 이유는 극도로 분노하고 화를 내지 않을 때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동우에게도 위험했던 순간이 있었다.

이동우는 그날도 어머니는 운동을 나갔고 아내는 출근한 상황이라 집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고 한다. 날씨도 좋았고 햇살도 비춰 평화로운 날이었지만 이동우는 급격한 우울증에 빠졌다.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몽유병 환자처럼 부엌에 가서 뾰족한 것을 찾았어요.”

과일을 먹다 남은 접시 위에 포크가 있었다. 포크를 들고 눈을 찌르면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개그맨의 기질은 어쩔 수 없나 봐요. 그 짧은 순간에 포크를 한 쪽만 찌르면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 나머지 한 쪽은 아파서 못 찌를 것 같더라구요.”

이동우는 포크 하나를 더 찾아서 두 손에 포크를 들고 바들바들 떨었다. 순간 잘 보이지도 않던 그의 눈 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신생아 준비물들이었다. ‘곧 태어날 아이 얼굴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손에 힘이 빠졌고 안타까운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게 힘든 고비를 넘기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견뎠다. 하지만 그에게 뜻하지 않은 시련이 찾아왔다. 자주 두통을 호소했던 아내였다. 아내의 병원 검사 결과는 뇌종양.

악성종양은 아니었지만 수술 후유증은 감수해야 했다. 병원장은 그에게 살기 위해서는 수술을 해야 하지만 종양이 청신경에 닿아 있어 수술 후 청각을 잃고 반신불수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됐지만 아내는 청각 한쪽을 잃었다.

그는 가끔 아내가 팔 다리에 감각이 없다고 할 때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지만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요즘 세상이 달라 보인다고 했다.

“내 등에 날개가 생긴 것 같아요. 아주 자유롭고 홀가분해졌거든요. 제가 슈퍼스타도 아니고 장동건도 아닌데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에 솔직히 놀랐습니다.”

이동우는 많은 사람의 관심과 사랑이 자신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고 했다. 

또 그는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삶을 받아들이면서부터 세상이 달려졌다고 고백했다.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힘들었지만 받아들이고 나니까 세상이 다시 보였어요. 처음엔 180도 바뀐 제 삶이 고통스러웠지만 용기가 생겼어요. 가장으로서 책임감도 느끼고 5살 된 딸과 아내에게도 멋진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그는 단단해졌다.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며 자신이 받은 사랑을 어떻게 돌려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이동우의 제안으로 재결성된 틴틴파이브(김경식, 이웅호, 이동우, 표인봉, 홍록기)는 5년 만에 ‘청춘’이란 곡을 발표했다. 이 앨범의 수입 전액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쓰인다. 현재 평화방송 DJ로 발탁된 그는 라디오 진행도 도전하고 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