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자신의 한계를 느낀 주발은 승상 자리를 사임하고 물러났다. 그 1년 뒤에 승상인 진평이 죽자 주발은 다시 승상 자리에 기용됐다. 그러나 10개월쯤 뒤에 이번에는 문제로부터 승상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권고 받았다. 주발은 당장 벼슬을 내어 놓고 영지인 강현으로 내려갔다. 영지로 내려간 주발은 그 때부터 공포에 사로잡혔다.

하동군의 장관이나 군사령관이 각 현을 돌아보고 강현으로 올 때마다, 문제가 자기를 죽이기 위해 보낸 것은 아닌가. 겁을 먹고 스스로 갑옷과 투구로 무장하고 가신들에게도 그렇게 시키고는 그들을 맞았다.

1년 남짓 동안에 그런 일이 몇 번 되풀이 되는 동안에 주발은 모반의 혐의로 고발됐다. 문제는 이 사건을 정위에게 맡겼다. 정위는 주발을 사로잡아 옥리를 시켜 심문했다.

주발은 죽음이 두려워서 변명조차 변변히 하지 못했다. 그러나 고문이 가해지자 옥리에게 천금을 주어 이것이 뜻밖의 효과를 나타내었다. 옥리가 조서 뒤에다 ‘공주에게 증언을 시키라’고 써 보인 것이다. 공주란 문제의 딸로 주발의 큰 아들인 승지의 아내다. 옥리는 그 공주를 증인으로 세울 것을 가르쳐 준 것이다.

그 무렵 문제의 주위에서도 주발을 구제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주발은 일찍이 문제로부터 받았던 벼슬과 포상을 모두 박 태후의 동생 박소에게 주었다. 이 박소가 주발이 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자 박 태후에게 구원을 호소한 것이다. 태후도 주발이 모반을 일으킬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므로 문제가 찾아오자 꾸짖었다.

“강후를 체포하다니 무슨 일이오? 그 사람은 여씨 일족을 없애고 그대가 즉위할 동안 옥새를 가지고 있었소. 그뿐 아니라 그때 그는 북군의 장군이었소. 모반을 일으키려면 언제든 가능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소? 권세가 한창일 때 모반치 않은 사내가 작은 고을에 틀어박힌 지금에 와서 모반을 하다니 그런 말이 어디 있소?”

그때는 문제도 이미 주발의 조사 내용을 읽고 혐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 자리에서 풀어 주기로 약속했다.

“이번 문제는 저의 잘못이었습니다. 옥리의 심문에 혐의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으니 곧 석방시킬 것입니다.”

문제는 즉시 주발을 석방하고 영지로 돌려보냈다. 감옥에서 풀려난 주발이 말했다.

“일찍이 백만 대군을 이끈 나였지만 옥리 하나가 이렇게 대단한 줄은 미처 몰랐다.”

강후 주발은 영지에서 문제 11년(기원전 196년)에 죽었다. 시호는 무후이다.

고조 때 육가는 황제 앞에 나가 강의할 때마다 정치에 있어서 시, 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했다.

어느 날 고조는 짜증을 내며 호통을 쳤다.

“나는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다. 시, 서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자 육가가 말했다.

“폐하는 과연 마상에서 천하를 얻으셨습니다. 그러나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가 있겠습니까? 저 탕왕, 무왕을 보십시오. 탕왕과 무왕은 걸과 주를 무력으로 없앴습니다만 천하를 얻은 뒤에 문의 힘으로 다스렸습니다. 문과 무를 병행하는 것, 이것이 천하를 다스리는 비결입니다.”

고조는 이윽고 부끄러운 표정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대의 말이 옳을지도 모르지. 나를 위해 진나라가 천하를 잃은 것은 무엇이며 내가 천하를 얻은 것은 어째서인가. 그리고 옛 나라의 흥망에 대해서도 들려주게.”

육가는 국가존망의 갖가지 모습을 12편의 책자로 만들었다. 1편을 상주할 때마다 고조는 칭찬했으며 측근들은 만세를 부르며 축하했다. 그 책은 ‘신어’라는 이름을 붙였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