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장수 노인이 받은 특별한 벼슬 ⓒ천지일보(뉴스천지)

유교적 경로사상 입각한 노인직
천민이라도 나라에서 벼슬 내려

정조, 왕실 어른 경사 축하 행사
7만명 長壽 노인에게 벼슬 내려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할아버지, 밖에 나와 보셔유. 나라에서 벼슬을 내린대유!” (손자)

“뭐? 벼슬을 내린다고?” (할아버지)

눈이 휘둥그레진 할아버지. 밖으로 나오니 정말 한 관리가 집 앞에 있었다. “무슨 벼슬을 준다는 말이오?” 할아버지가 질문했다.

관리는 “국법에 따라 벼슬을 내리고자 합니다. 여든 살이 넘는 노인에게는 무조건 벼슬을 내리라 하였습니다”라고 답한다.

◆80세 넘는 노인에게 노인직 내려

100세 시대인 오늘날과 달리, 과거에는 50세를 넘기기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래서 60살이 되면 큰 복을 타고 났다 하여 ‘환갑잔치’를 벌였다. 그러한데 80세는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겠는가. 이에 조선시대에는 장수한 노인에게 벼슬을 내렸다. 노인직(老人職) 혹은 수직(壽職)이라 불리는 제도였다.

비록 녹봉도 없고 직책도 없는 명예직이긴 하지만, 유교적 경로사상에 입각해 만들어진 제도였다. 젊은 시절 벼슬이 있던 사람은 품계를 올려주고 벼슬이 없는 사람은 벼슬을 줬다. 비록 천민이라도 벼슬을 내렸다.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에 노인직에 대해 잘 기록돼 있다.

“나이 80세 이상이 되면 양민이거나 천민이거나를 불문하고 1품계를 수여하고 원래에 품계가 있는 자는 또 1품계를 더하되 당상관은 왕의 교지가 있어야 임명한다.”

이 같은 노인직은 세종 대 이후 여러 차례 제수(除授: 추천의 절차를 밟지 않고 임금이 직접 벼슬을 내리던 일)됐다. 노인직은 매년 초에 각 도 관찰사가 여러 읍의 호적에서 80세 이상된 노인을 뽑아 이미 받은 노인직의 유무를 조사한 다음 이조에 보고해 제수하게 돼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 17년 이 같은 명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백 살이 된 노인에게는 해마다 쌀 10석으로 상을 내리라. 매월 술과 고기를 보내 주고는 월말마다 그 수효를 기록하여 보고하라.”

이는 판중추원사 허조(許稠)가 임금에게“현 악학별좌(조선 초기 악학에 두었던 벼슬아치) 정양의 할머니가 나이 1백 3세이오니, 위로와 안정의 길을 가하여 늙은이를 존경하는 뜻을 보이시기를 청하옵니다”라고 아뢰면서 시작됐다.

그때 임금은 “70~80세 노인을 위로 구제하라는 것이 이미 법령에 명시돼 있으나, 다만 백 세를 지난 자가 있으리라고는 사료되지 않아서 따로 법을 세우지 않았노라”하고, 의정부와 의논하고 이와 같은 교지가 있도록 했다.

◆7만 여명 장수 노인에게 벼슬 내려

정조 대에는 7만 여명의 전국의 장수한 노인에게 벼슬이 내려졌다. 정조는 대왕대비 김씨(정순왕후)가 50세,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60세가 된 1794년과 혜경궁 홍씨의 회갑인 1795년 두 해에 걸쳐 두 왕실 어른의 장수를 축원하고 효성을 널리 확산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거행했다.

이때 정조는 두 왕실 어른의 경사를 축하하면서 전국의 장수한 노인을 조사해 벼슬을 내렸는데 그 수가 무려 7만 5145명이었다. 또 장수 노인을 조사해 벼슬을 내린 내용을 기록한 ‘어정인서록’을 간행하게 하기도 했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장수한 노인을 공경하는 뜻으로 벼슬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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